2045년 우울한 세상에서 평범한 소시민들은 너나없이 인공지능(AI) 기반의 ‘오아시스’(OASIS)라는 가상현실(VR) 게임에 빠져든다. 내 아바타같은 디지털 캐릭터를 통해 이상 세계를 꿈꾼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공상과학(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 웨이드 오웬 와츠(타이 쉐리던)는 빈민촌 컨테이너에서 VR로 통하는 고글을 끼고 컨트롤러를 통해 오아시스로 들어가는 게 낙이다. 마침 오아시스 창립자인 제임스 도노반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VR 게임에 숨겨둔 3개의 수수께기를 푼 사람에게 회사를 넘기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힌트는 오로지 1980년대 대중문화에 답이 있다는 것.
와츠는 우상이었던 할리데이의 인생이 펼쳐지는 VR 속 인생 박물관에서 그의 과거를 관조한 끝에 결국 자동차 경주에서 후진하는 역발상을 통해 첫 미션을 완수한다. 대중의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받게 되지만 VR에서 만난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에게 금기인 본명을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오아시스를 가로채려는 거대 게임사(IOI)의 드론 공격 등 살해위협에 시달린다. 하지만 와츠는 아르테미스와의 사랑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바탕으로 마치 어벤저스처럼 끝내 오아시스를 함께 지켜낸다.
지난달 말 개봉한 이 영화에서 인류의 미래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속한 발달로 장밋빛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잿빛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감성이 메마르게 되는데 결국 아날로그 시대 감성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영화 속 오아시스의 첨단 과학기술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가능할까. 우선 VR의 디지털 캐릭터를 제어하는 기술이 고도화되지는 않았지만 현재도 가능하다. 게임·영화 그래픽솔루션 기업인 EVR스튜디오의 구범석 이사는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자신의 동작이나 얼굴 표정을 디지털 캐릭터에 반영하는 모션캡처(motion capture)나 페이셜캡처(facial capture) 기술은 지금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이해가 쉽다. 구글 이미지에서 ‘vr haptic’이라고 치면 컴퓨터의 기능 가운데 촉각과 힘·운동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인 햅틱 장비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햅틱 기술은 진동모터나 스피커 등을 통해 물리적 접촉이나 폭발 등을 표현하는데 장갑, 조끼, 전신 슈트 등의 형태로 일부 상용화되고 있다. 후각을 표현하는 기술도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박재욱 EVR스튜디오 이사는 “모션캡처나 페이셜캡처 기술이 할리우드에서 많이 쓰이고 있으나 워낙 고가의 장비나 시스템이 필요해 일반 VR 게임에서는 아직 소비자들이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동작을 디지털 캐릭터가 따라 한다고 해서 영화처럼 사람의 마음까지 반영하는 것은 요원한 얘기다. AI와 바이오생명 과학이 무한대로 발전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불가능한 미션일 가능성이 높다. 가상과 현실세계를 넘나들며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은 SF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영화에서는 와츠가 할리데이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시간을 거스르거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타임머신의 개발도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자칫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도 있지만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다.
이 밖에 VR에서 와츠가 게임머니를 취득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는 슈트를 사면 현실 세계로 배달이 이뤄지고 그것을 착용하는데 그것은 현재도 가능하다. 김재환 EVR스튜디오 대표는 “현재 기술로도 게임 속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가능하고, 과거 미국 ‘에버퀘스트2’ 게임에서 피자를 주문하면 배달해준 적도 있었지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와츠가 쓴 VR 고글은 오늘날과 형태가 같은데 앞으로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IOI가 와츠를 찾기 위해 CCTV 거리 영상에서 그의 얼굴을 AI 컴퓨터 비전 기술로 선명하게 잡아내는 것도 요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