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미술품을 수집한 세계적 컬렉터인 록펠러 집안의 소장품들이 경매에 나온다. 미국의 첫 번째 억만장자였던 ‘석유왕’ 존 D. 록펠러의 손자인 에드워드 록펠러(1915~2017)가 지난해 타계하면서 아내 페기 멕 그로쓰와 함께 수집한 소장품들을을 자선 경매에 올리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다음 달 8~10일 뉴욕에서 열리는 크리스티 경매는 이들 미술애호가 부부의 이름을 따 ‘페기와 데이비드 록펠러 컬렉션 경매’로 이름 붙었고 ‘세기의 경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출품작 규모만 총 1,550여 점, 총 응찰 예상가 약 5,300억원(5억달러)에 이른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세상을 떠난 후 지난 2009년 열린 소장품 경매 4억3,000만 달러를 뛰어넘어 단일 컬렉션 경매로는 사상 최대 거래액이 될 전망이다.
5월 경매를 앞두고 방한한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코너 조던 크리스티 뉴욕 인상주의·현대회화 부회장과 벤 클라크 크리스티 아시아 부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크리스티코리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록펠러 컬렉션 경매를 설명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로 예상 응찰가는 970억~1,300억원(9,000만~1억2,000만 달러)이다. 애잔한 청회색 조의 벽 앞에 선 우수 어린 표정의 소녀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누드화로, 피카소 초기 ‘청색시대’ 직후 1905~6년의 파리 시기를 가리키는 ‘장미빛시대(Rose Period)’ 작품이라 관심이 뜨겁다. 지난 200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1억400만달러에 낙찰돼 당시 세계 최고가 기록을 세운 ‘파이프를 든 소년’이 바로 이 시기 대표작이다.
조던 부회장은 “피카소의 장미빛시대는 클래식과 모던 화풍을 뒤섞어 그리던 시기로 기간이 짧고 작품 수가 적어 무척 비싼 편”이라며 “피카소의 앞집에 살며 하루하루 꽃을 팔아 생계를 잇던 보헤미안 소녀 린다를 모델로 그린 것인데 문인이자 컬렉터인 거트루드 스타인이 소장하던 것이 1968년에 록펠러에게로 넘어왔다”고 소개했다. 조던 부회장은 “거트루드 사후에 소장품을 정리하면서 6명의 컬렉터가 모자 안 제비뽑기로 소장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페기가 꼭 갖고 싶어하던 이 그림을 손에 넣었다”면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1억8,200만불에 팔리며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우는 등 가격이 상승 중이라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대작은 1923년 앙리 마티스가 프랑스 니스에서 그린 ‘목련 옆의 오달리스크’로 예상 응찰가는 750억~970억원(7,000만~9,000만 달러)이다. ‘록펠러 마티스’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며, 낙찰되면 마티스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하게 된다. 누워있는 나부(裸婦) 그림은 앵그르, 들라크루아 등 19세기 거장들이 선호한 소재인데 마티스가 이를 파격적인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 의미있다. 이 외에도 클로드 모네의 ‘활짝 핀 수련’이 약 540억~750억원 예상 응찰가에 출품됐다.
출품작 중에는 주칠장과 도자기, 소반 등 한국 고미술품 22점도 포함돼 있다. 조던 부회장은 “록펠러 부부는 ‘아름다운 것은 뭐든 가치 있다’는 철학으로 동서양 불문하고 수집했다”고 귀띔했다. 클라크 부회장은 “록펠러는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설치하고 개인 별장 안에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을 설치하는 식으로 작가를 직접 후원했다”면서 “재벌가문 록펠러의 기업정신과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를 배울 수도 있는 특별한 경매”라고 말했다. 경매 수익금은 하버드대학, 록펠러대학, 뉴욕현대미술관(MoMA)등 의학·교육·환경을 위해 전액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