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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교수님이 장악한 국민연금

임세원 기자



42조원 규모인 주택도시기금은 최근 민간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평가위원에 금융투자업계 출신 선임을 고민하고 있다. 평가위원회가 교수 등 학자 일색이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 615조원으로 이들보다 덩치가 큰 국민연금은 교수와 연구원 등 경제학자 8명으로 구성한 의결권행사전문위원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키맨이 된 이들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을 만드는 역할도 맡고 있다. 복지와 의료 전공 학자들이 주축인 보건복지부 태스크포스팀은 국민연금의 투자기구인 기금운용본부의 조직 개편안을 권고했다.

연기금이나 공제회는 수익률을 높일수록 보통 사람의 혜택이 늘어나므로 투자 전문성을 키워야 할 명분이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공공’이라는 이유로 투자 판단이나 심의하는 자리에 금융투자업계를 멀리하고 학계를 가까이한다. 투자논리에 얽매이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라지만 최근에는 본말이 바뀌어 아예 의사결정기구에서 투자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교수를 기용하는 것은 이론에 밝으면서 학교에 적을 두고 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생각에는 학자는 업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관념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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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투자현장에서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어떤 교수는 연기금과 공제회의 투자심의를 모두 담당하면서 둘의 차이를 모르고 매번 “연금과 공제회의 투자 전략이 왜 다르냐”는 질문을 한단다. 공제회는 매년 일정한 금액을 돌려줘야 하므로 장기 투자를 하더라도 연말마다 현금 흐름이 나와야 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공제회보다 덩치가 큰 장기투자자여서 투자 대상을 다양화할 수 있다. 국내 연기금이나 공제회가 다양한 수익률의 자산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고 특정 자산에 쏠리는 원인 중에는 투자심의기구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일부 해외 투자자문사는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수요가 높은 특정 유형의 상품 수익률을 과장해 팔고 있다는 제보도 있다.

이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최종 발표된다. 국내외 금융투자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인물이 유력 후보로 알려졌다. 그러나 ‘누가 온들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는 업계의 푸념이어서가 아니라 국민 노후에 위험한 징조라 걱정스럽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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