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원은 엘리엇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의 판결을 상당수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법원의 판단을 보면 삼성이 합병 건을 청와대 등에 청탁한 적이 없으며 정부가 합병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결론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엘리엇이 이들 판결은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부 판결만을 근거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가장 최근 판결은 지난달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의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 등은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독 면담 당시 이미 현안이 해결돼 종결됐다. 면담 당시 진행 중인 (다른) 개별 현안도 박 전 대통령이 현안 해결을 지시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2월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도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으로부터 삼성물산 합병 등과 관련한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삼성물산 합병 등 각 계열사가 추진한 현안은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며 이 부회장이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도와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낸 민사소송에서도 삼성물산 합병이 적법했고 외부 개입이 없었다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합병 찬반을 결정하는 과정에 보건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1심과 2심은 각각 엘리엇 주장처럼 이들이 삼성물산 합병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두 사람이)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위법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