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연임 시 외부평가 의무화 등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입법 추진에 금융사들이 반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고경영자(CEO) 셀프연임 논란 등 지배구조 문제와 채용비리 의혹 등으로 코너에 몰렸던 금융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7일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금융당국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공식 전달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 연임 시 외부평가 의무화 △임원 보상계획에 대한 주총 심의 의무화 △감사위원 타 위원회 겸직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금융사들의 의견을 물은 뒤 다음달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 대책이라며 공식 발표까지 한 사안이지만 금융사들이 막판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사들은 입법예고 의견서를 통해 사외이사가 연임할 때 외부평가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도입을 반대했다. 금융당국은 CEO 선출 등 금융사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금융사들은 “외부 사람이 어떻게 사외이사를 평가할 수 있겠느냐”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를 외부에서 평가하면 이사회 의사록이나 참석률 같은 단편적인 요소로만 성과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외부기관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감사위원의 타 위원회 겸직 금지 조항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감사위원의 직무 전념성을 높이도록 업무 연관성이 큰 보수위원회를 제외하고는 이사회 내 다른 위원회를 겸직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위원회의 성격에 따라 겸직을 허용할 여지를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경우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어 겸직 금지가 수긍이 간다”면서도 “임원후보추천위원회까지 감사위원의 참여를 제한하려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임원 보상계획을 주총에서 심의받도록 하는 방안도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은 주주권익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등기임원을 주총에서 선임할 때 임기 동안의 총 보상계획에 대해 투표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금융사들은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받기 위해 단기실적에 치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은 금융 당국이 지난 2014년 마련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어서 은행들이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4년 전에 처음 내놓은 모범규준에 맞춰 금융사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정반대로 입법을 하겠다니 혼란스럽다”면서 “최근 금융지주 CEO들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나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빠지고 있는 만큼 금융 당국도 업계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 업권의 의견을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