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의 6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신흥국 통화는 좀처럼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저금리와 약달러 속에 신흥 시장에 몰린 자금은 미 연준이 계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10년물 미 국채금리가 지난달 하순 3%를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자 미국으로 귀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해외 자본의 유출에 취약한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달러 대비 자국 통화인 페소와 리라화가 각각 급락하자 중앙은행들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지난주 정책 금리를 3차례나 인상에 나서며 기준금리를 40%로 끌어올렸고, 지난달 금리 인상을 단행한 터키는 리라화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자 7일 리라화의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줄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 미국의 긴축 행보에 국제유가 상승이 기름을 부으며 신흥국들의 위기는 가중되고 있다. 통상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는 유가에 하락 압력을 가하는 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5년 7월 체결된 이란 핵 합의를 폐기할 가능성이 커지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달러 강세를 뿌리치고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7일(현지시간)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장중 75달러를 넘어 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이란 핵합의 폐기를 공식화하며 대(對) 이란 경제 제재를 재개한다고 발표할 경우 원유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져 국제유가는 추가 상승할 여지가 높다.
유가 상승은 대규모 감세로 가뜩이나 경제 과열 우려가 제기되는 미국에 물가 상승 압력을 더욱 높여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올리는 동력이 될 수 밖에 없다. 뉴욕 금융시장은 내달 연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고 하반기 금리 인상 횟수도 기존 1차례에서 2차례로 늘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준이 내달 긴축 강화를 천명할 경우 신흥국 시장의 자금 유출은 급속도로 빨라질 수 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달 신흥국의 외국인 투자가 1년 6개월 만에 2억달러 순유출로 돌아섰으며 지난달 16일 이후로 보면 자금 유출 규모는 55억달러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JP모건은 “헤지펀드들이 먼저 신흥국에서 자금을 뺐지만 연기금 등까지 가세하면 신흥국 시장은 급속히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만 한국은 원화 가치가 남북 관계 개선 등의 영향으로 달러 강세 영향권에서 일정 부분 비껴나 있고 외국인 자금 유출 움직임도 크지 않아 당장 큰 악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상승도 기업 비용과 물가 상승을 촉발하지만 산유국에 대한 수출 확대 등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다. 다만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신흥국 시장까지 축소되면 기업들의 수출에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이란과 수출입 거래를 늘려온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되는 부분이다./뉴욕 = 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