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중 간 호흡 맞추기일까. 미중 간 줄다리기의 대리전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중국 다롄시를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동함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중 정상 간 이번 재회가 한반도 주변국 간 조율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에 호응한 역할분담 차원이라면 북핵 문제 해결에는 청신호가 될 수 있다. 반면 북미 간 밀착을 의식한 중국 측의 견제구에 김 위원장이 장단을 맞춘 것이라면 향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기상도에는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 의도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전개될 경우의 수 예측이 한층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남북미 3자 간 속전속결로 핵 문제 해법의 가닥을 잡으려던 우리 정부의 당초 밑그림에 중국이라는 변수를 더해야 하는 타이밍이 앞당겨진 형국이기 때문이다.
다소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대목은 북중 정상 간 회동이 우리 정부의 뒤통수를 치듯 몰래 이뤄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저녁 기자들에게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다롄 회동 사실을 중국 정부가 우리 쪽에 미리 알려왔다”는 내용의 문자 공지를 보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어제 다롄에 들어가 오늘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중국 정부가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최소한 중국이 남한과 정보소통은 하면서 대북접촉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앞서 지난 3월 김 위원장의 첫 방중 당시 해당 사실을 우리 정부가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풍경과는 대비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남북미중 간 호흡 맞추기를 위한 역할분담일 수도 있다. 지난달 27일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에 뜻을 모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을 설득해 북핵 폐기 후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얻으려 한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의 방북 사실이 공식 확인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협의를 트위터로 예고하며 북한에 대해 “신뢰가 구축되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남북미중 간 긴밀한 4각 공조에 시동이 걸릴 수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남북 정상의 소통 노력에 대한 미중 정상의 호응이 단순히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트위터 메시지에서 시 주석과의 최우선 대화 주제로 양국 간 갈등 현안인 ‘통상(trade)’ 문제를 꼽은 점은 남북미중 간 대화가 아직은 미중 간 패권 다툼의 일환으로 취급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미중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북미 정상 간 협상 테이블에 영향을 미칠 경우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접점 찾기는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