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전쟁 위협을 숨긴 위장함대…가면 뒤 심리는 '힘의 불균형'

갤러리 수, 내달 2일까지 中 지엔처 개인전 '배너맨'

지엔처 ‘군함’지엔처 ‘군함’




지엔처 ‘배너맨’ /사진제공=갤러리수지엔처 ‘배너맨’ /사진제공=갤러리수


마징가 제트(Z)같은 로봇의 머리나 헬멧, 중세의 갑옷 혹은 아프리카의 가면, 심지어 확대해 들여다본 잠자리의 눈알 같기도 하다. 여러 개의 직선들이 화면을 분할하고 있어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 안을 채운 색채는 하늘빛·흙색·바위색 등 자연에 가까우며, 곧게 그으려 애썼지만 비틀거림을 보여주는 선이나 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붓질은 인간적이다. 중국의 1980년대생 신세대를 가리키는 ‘바링허우(80后)’의 대표 작가 지엔처(34)의 최신작 ‘배너맨(Banner men)’이다. 그의 개인전이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수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린다. 배너맨은 전쟁터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 즉 기수(旗手)라는 뜻으로 통치자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면 뒤에 숨긴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중세의 전쟁, 연합군의 전쟁 때 사용되던 문양과 휘장, 각종 갑옷과 가면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상당수 게임들이 중세를 배경으로 과거의 전쟁문화와 무기를 이용합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이런 가상세계에서 가상의 이미지를 자신의 아바타로 세우고, 알지도 못하고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한 팀을 이뤄 싸우며 활동합니다. 전쟁과 무기라는 위협적 소재를 온라인상에서는 즐기고 있죠.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도 전쟁과 난민, 폭력은 실재하죠. 그런 가면 뒤의 심리, 힘의 불균형 상태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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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도는 비장하다. 무겁고 답답한 주제인데도 큐비즘과 표현주의, 그래피티와 색면추상을 절묘하게 뒤섞어 보여준다. 또 다른 연작인 ‘군함’ 시리즈는 전쟁의 위협을 숨긴 위장함대가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요새’ 연작은 중세의 휘장과 가문의 상징 등을 조합한 것인데 경쟁국가들의 깃발이 화합과 축제의 만국기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중국 태생이지만 4살부터 독일에서 자랐다. 베를린예술대학에서 독일 거장들에게 그림을 배웠을 뿐 아니라 훔볼트 대학 등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철학박사다. 그에게 지금의 한국 현실은 남다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현장에서 직접 본 내가 남북한의 평화 메시지가 오가는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아주 흥분됩니다. 이번 작품들의 기본 골자는 이상향이자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과거 유럽도 하나의 줄기에서 각각 나뉜 가문들끼리 싸웠던 것이죠. 내 그림에는 정치색이 없지만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꿔야 할 때라는 것은 분명히 말하고 싶네요.”

9살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지엔처는 “그림은 습관”이라고 말했다. 설치와 미디어아트에 밀려 ‘촌스럽다’는 소리 듣는 회화에 천착하는 이유를 “1960년대부터 ‘회화는 죽었다’고들 했지만 그런 위기감이 도전이며 아날로그적 회화성이 오히려 대안적으로 느껴져 계속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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