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설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신흥국 시장에서 투자금이 급격하게 회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긴축을 시사한 후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폭락했던 테이퍼탠트럼(긴축발작)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펀드 분석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 자료를 인용해 2일부터 9일까지 신흥국 주식펀드에서 유출된 금액이 총 16억달러(약 1조7,264억원)로 2017년 8월 이후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특정 지역이 아닌 범신흥시장 펀드 ‘글로벌 EM’에서만도 총 11억달러가 빠져나갔다. 글로벌 투자가들이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신흥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같은 기간 신흥국 채권펀드에서도 총 21억달러가 인출되며 2월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 특히 채권펀드 자본 유출은 지난주까지 3주 연속 이어졌다. 2월 1차 위기설이 나왔을 때도 미국 임금 상승률이 2009년 6월 이후 최고치인 2.9%를 기록하면서 “물가 상승으로 연준의 긴축 기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돌아 시장 불안을 우려한 글로벌 투자가들이 자금을 대거 회수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준의 긴축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신흥국 위기설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신흥국을 둘러싼 글로벌 투자가들의 우려는 주요 지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JP모건 신흥시장통화지수(EMCI)는 이날 69.092로 4월 초 대비 4.2% 하락했다. 세계 22개 신흥시장의 중대형 기업 주가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FTSE이머징인덱스도 562.87로 연중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신흥국 통화·주식·채권 모두 약세를 보인 것이다.
신흥국 위기의 진앙인 아르헨티나 페소 가격은 이날 전일 대비 0.03% 내린 달러당 22.7005페소로 4일 연속 하락했다. 아르헨티나와 유사하게 재정적자 우려를 사고 있는 터키 리라화와 61년 만의 정권교체로 주요 경제정책이 대거 수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도 최근 급락한 바 있어 투자가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글로벌 투자가들이 2013년 긴축발작을 겪었던 아시아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연준이 양적완화를 시작한 2009년 이후 신흥국 회사의 달러표시채권 규모가 급증해 지난해 2조8,3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부채가 폭증했다. 다만 2013년의 긴축발작을 겪은 신흥국들이 경상수지 개선 등으로 대비해와 타격이 작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JP모건은 “지난 한 달간의 신흥시장 조정 장세는 장기간 약세장의 시작이라기보다 추가 매수 기회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