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갈라파고스규제'로 기업 허리 휠라…지표 내리막인데 정책 리스크 부각

지배구조압박·기업 사정 분위기 속

다중대표소송·집중투표제 의무 등

글로벌 스탠더드 거리먼 규제 양산

美·日 등은 탄력근로 단위시간도 1년

김상조(왼쪽 여섯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체임버 라운지에서 10대그룹 최고경영자들과 정책간담회을 갖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상조(왼쪽 여섯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체임버 라운지에서 10대그룹 최고경영자들과 정책간담회을 갖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치 전쟁 같아요. 어디 하나 조용한 그룹이 있어야죠.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터지기도 어려운 거 아닌가요”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세계 경제는 호황이라던데, 우리만 소외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며 “열심히 해도 어려운데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 정책 리스크가 요즘처럼 높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요즘 재계는 살풍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바람몰이식 재벌 개혁 드라이브, 구조조정·혁신과는 거리가 먼 노동 정책, 지지부진한 규제 개혁 등으로 기업의 기가 눌릴 대로 눌렸다. 경제 지표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3월 실업률(4.5%)의 경우 지난 2001년 3월(5.1%) 이후 17년 만에 최고로 치솟은 반면 산업생산은 5년 새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제조업 가동률(70.3%)도 금융 위기 이후 9년 만에 최저치다. ‘경고 사이렌’의 데시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재계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 기업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규제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가령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기업 지배구조를 흔들만한 독소조항이 많다. 다중대표소송(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모회사 주주가 모회사 지분을 0.01%만 갖고 있으면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임원에 대한 소송 권리 부여), 집중투표제(이사 선임 시 의결권 몰아주기)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다중대표소송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일본만 법제화했고 조건도 100% 모자회사로 우리와 달리 엄격하다. 집중투표제는 러시아·멕시코·칠레 등 3개국만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1940년대, 일본은 1970년대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주 간 파벌 싸움의 도구로 전락했다며 버린 제도를 뒤늦게 강제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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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최근 삼성에 아예 지배구조 정답(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사 설립)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 보험사가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할 근거는 없다. 대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차등의결권,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의 신주배정 권리를 부여한 포이즌필 등을 도입하지 않은 것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문제를 키울 소지가 다분하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포스코 등 국내대표기업의 외국인 지분은 50% 안팎에 이른다. 최근 엘리엇으로 홍역을 겪고 있는 현대차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기업 지배구조에 훈수를 두면서 투기 자본에 소송 빌미를 줄 가능성도 크다. 재계의 한 임원은 “엘리엇만 해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이전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현 정부의 관점을 문제 삼아 투자자-국가소송(ISD)까지 제기한 거 아니냐”며 “이런 일이 더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단체의 고위 관계자도 “심해지는 일자리 기근,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에 매진해야 할 판에 지배구조에 수조 원을 써야 하는 기업 현실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근로시간단축과 관련해서도 우리만 개선에 미온적인 제도가 있다. 바로 3개월마다 주당 52시간(법정 근로시간)을 맞추도록 한 탄력근로제다. 기업들은 제품 수명, 계절적 요인 등에 따라 특정 기간에 몰리는 업무를 고려해 탄력근로제의 단위시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하반기 실태조사부터 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한 기업 실무자는 “미국, 일본, 프랑스만 해도 단위기간이 다 1년”이라며 “주당 52시간을 지키기 위한 민원을 그렇게 외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볼멘소리했다.

정부의 동시다발적 ‘기업 몰이’에 대한 우려도 높다. 총수가 법정 구속된 롯데, ‘때리기 경쟁’의 볼모가 된 듯한 삼성, ‘갑질’ 논란이 발단이 된 한진 사태 등은 별개로 두더라도 ‘사정 정국’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LG마저 오너 일가의 탈세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자 충격은 더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이런 사정 분위기에) ‘어떤 복선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기업이 불안해하면 우리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염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대로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요즘 분위기는 정상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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