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이해관계로 12년째 표류하던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에 다시 볕이 들지 주목된다. 그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사업부지 매각을 놓고 대주단이 대출채권 통매각 방식에 합의하면서 조만간 공식 매각절차가 진행돼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예금보험공사 등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채권 선순위 대주단 12개사는 최근 대출채권 일괄매각에 합의하고 조만간 매각 주간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달께 매각 공고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헌인마을은 1960년대 나환자촌으로 만들어졌다. 1980년대 들어서는 영세 가구공장과 무허가 판잣집들이 들어서면서 가구단지로 유명해졌다. 이후 지난 2006년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시공사로, 우리강남PFV가 시행사로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강남PFV가 사업 추진을 위해 우리은행 등 금융권에 토지를 담보로 2,311억원을 대출했지만 2011년 자금난에 빠지면서 사업이 좌초됐다. 더구나 시공사로 참여한 두 건설사마저 동시에 부도나면서 회생절차에 들어가 설상가상이 됐다. 이후 토지 담보권은 대주단이, 사업권은 시행사인 강남PFV가 보유하게 됐다. 대주단은 이후 대출 회수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선순위 채권자 12개사와 후순위 채권자 3개사의 이해관계가 달라 실패했다. 사업신탁계약에 따르면 채권자 전원이 동의해야 매각토지를 매각할 수 있지만 후순위 채권자는 토지를 매각해도 남는 게 없기 때문에 끝까지 반대를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대주단을 대표해 예보가 나서 2015년 8월과 2016년 11월에 대출채권의 매각을 추진했지만 통매각이 아니다 보니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채권 매입 후에 나머지 채권자와 따로 협상을 해야 하다 보니 자칫하면 발이 묶여 금융비용만 커질 수 있어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민간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사업지구 선정 청탁 의혹이 불거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 예보가 선순위 채권자 12개사를 설득해 통매각에 합의하게 됐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헌인마을 개발사업의 경우 대출채권 선순위 대주단만 12개에 달하고 법적 송사는 물론 수많은 민원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케이스”라며 “선순위 대주단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 이번에 채권 일괄매각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주단은 장기 표류하고 있는 헌인마을 개발사업의 정상화와 경영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가 헌인마을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파산한 솔로몬저축은행이 헌인마을 사업 대주단에 포함돼 있어서다. 예보가 솔로몬저축은행 파산관리인이 되면서 나머지 대주단과의 조율 역할을 해온 것이다.
예보가 PF대출채권을 일괄매각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사업부지 내 토지주 210명 가운데 담보를 제공하지 않은 토지주를 설득해야 하고 사업권을 가진 강남PFV와 협의도 진행해야 해서다. 대주단의 한 관계자는 “사업 추진은 토지주 과반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가능한데 210명의 토지주 가운데 160명이 찬성하고 있어 (사업 추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강남PFV와의 협의절차 등의 문제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헌인마을 개발사업은 내곡동 13만2,379㎡ 부지에 3층 이하 고급 단독주택을 조성하는 것으로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에 최고급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대주단 관계자는 “강남에서 몇 남지 않은 미개발 지역인 헌인마을은 서울과 판교·용인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인데다 인근에 대모산이 위치하는 등 사면이 녹지에 둘러싸여 있다”며 “고급 주거지로서의 개발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헌인마을 개발사업이 대주단 대출채권 공동매각 방식으로 통매물로 시장에 나오면서 건설사와 부동산개발회사 등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부지의 감정가는 2,750억원이지만 대주단은 이보다 할인된 가격에 매각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단 관계자는 “강남의 알짜 주택부지를 감정가 대비 좋은 가격대로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공개입찰이기 때문에 매각가격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감정가보다 낮아도 매각을 하는 게 대주단 입장에서는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매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대부업법에 의한 대부업자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고 예보 측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