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등산하는데 통행료 내라?...국민 분노 폭발했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에 1만4,000여 명 동의... 유사 청원도 20여 개

사찰들이 문화재관람료 징수 목적과 위치에 맞지 않게 받아 분쟁 발생

정부, 정치권은 선거 앞두고 소극적 대응... 불교계는 무대응 일관

맑고 포근한 봄을 맞아 수많은 등산객들이 서울 관악산에 오르고 있다./서울경제DB맑고 포근한 봄을 맞아 수많은 등산객들이 서울 관악산에 오르고 있다./서울경제DB



국립공원 탐방로에서 사찰들이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자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공식 폐지된 이후 매년 이같은 소모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불교계의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불교계 역시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달 “국립공원을 출입하는데 왜 사찰이 돈을 받습니까”라는 글이 올라와 1만4,000여명이 동의 의사를 표시했다. 유사한 글 역시 20여개에 달한다. “계룡산을 등산할 때 동학사 관람료를 내야하고 속리산을 오를 때 법주사에 관람료를 내야 한다. 국립공원을 주로 등산하는 데 관람하지 않는 문화재관람료를 안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도 최근 올라왔다. 또 “등산로 주변이 사찰 소유의 땅이라는 이유로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등산로 인접 토지를 국가가 강제로 수용해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국민들이 이처럼 뿔난 이유는 사찰의 문화재관람료가 징수 목적에 맞지 않거나 징수 위치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관람료는 명칭 그대로 사찰이 보유한 불상 등 문화재를 관람할 때 내야 하는 돈이지만 일부 사찰들은 사찰 소유의 토지를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일종의 ‘통행료’ 목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지리산 일대 자리한 천은사의 경우 861번 지방도 가운데 일부가 사찰 경내지를 통과한다는 이유로 등산객에게 문화재관람료를 받다 법정 분쟁을 겪기도 했다. 대법원은 사찰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천은사는 ‘문화재보호구역 입장료’라는 명칭으로 변경해 여전히 탐방객에게 입장료를 받는 실정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이와 관련 “도시내 공공보행통로의 경우, 사유지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보행통행에 이용하도록 개방돼 있다”며 “최근 법원에서 공공목적에 부합하면 사적 소유자가 보행자 통행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어 사찰들이 탐방객에게 문화재관람료를 부당 수취하는 것은 법률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관람료는 사용처 또한 불투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찰들은 탐방객들에게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한편 정부로부터 문화재보수지원금도 받고 있다. 같은 문화재를 대상으로 자금이 이중으로 지원되는 셈이다. 중복을 막기 위해서는 사찰들이 문화재관람료 사용처를 명확히 공개해야 하지만 현재 조계종단 내부에서만 관련 정보를 알고 있으며 외부에는 세부내역을 알리지 않고 있다. 조계종단이 공개하는 문화재관람료의 사용처는 사찰집행(53%), 종단분담금(12%), 교육기관 특별회계(5%) 등 집행 내역에 대한 실질적 정보를 담보하지 않은 대항목별 구분뿐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보수지원금 집행내역을 살펴본 결과, 불교계 문화재와 사찰에 집행된 금액은 475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문화재관람료와 중복 지원으로 추정되는 자금도 수두룩했다. 순천 송광사의 경우, 문화재관람료로 성인 1인당 3,000원을 징수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정부로부터 문화재 보수사업비로 23억4,700만원을 수령했다. 정부가 지원한 내역을 보면 공양간 및 종무소건립(21억원), 흰개미방충(3,000만원) 등 문화재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문화재관람료로 충당 가능한 항목들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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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는 징수금액 책정 역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사찰들이 징수하는 문화재관람료는 사찰마다 제각각 달라 성인 1인당 1,000~5,000원 가량 된다. 가장 비싼 곳은 불국사로 5,000원 가량 되며 법주사, 화엄사 등은 3,000~4,000원, 석남사, 천은사 등은 1,000~2,000원이다. 이렇게 제각각인 문화재관람료의 징수금액이 합당한 지에 대해서는 공적인 논의가 사실상 없다. 현행법상 금액책정을 문화재 소유자에게 일임하고 있어 사찰들이 내부 운영위원회를 거쳐 징수금액을 임의로 정하는 상황이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사찰들의 노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유산인 문화재와 관련 국민 논의가 빠진 채 관람료 책정이 옳은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녹색사회연구소는 지난 2016년 “문화재관람료의 과다한 인상을 막기 위해 상한선 등을 지정하고 문화재관람료 책정의 공정성을 위해 불교계는 물론 정부, 학계, 지역주민 등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금액을 합리적으로 책정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문화재관람료와 관련 논란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팔짱만 끼고 있다. 다음달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불교계 심기를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 불교계에서 자발적으로 해결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는 가운데 강하게 밀어부칠 경우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문화재관람료 징수행태 개선에 대한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형남 법무법인 신아 변호사는 “국민들은 세금을 내면서 국립공원을 자유로이 통행할 권리를 이미 갖고 있는데 사찰에 통행세를 내야하는 이중부담을 겪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불교계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인 입법과 행정을 하지 않아 소모적 논쟁이 주기적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노웅래,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립공원 문화재관람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포럼에 조계종 관계자는 결국 불참해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 했다./사진=새로운 불교포럼 제공지난 3월 노웅래,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립공원 문화재관람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포럼에 조계종 관계자는 결국 불참해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 했다./사진=새로운 불교포럼 제공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조계종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3월 노웅래,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문화재 관람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란 주제의 포럼이 열린 바 있다. 오영훈 의원 등 당시 주최 측은 조계종에 연락해 포럼에서 의견을 개진해달라고 수차례 부탁한 바 있다. 또 조계종 관계자의 참석을 위해 포럼을 한 달 가량 연기하는 등 편의도 제공했다. 하지만 조계종은 결국 불참을 선언했고 포럼은 조계종 관계자 없이 진행된 바 있다. 당시 토론에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불교와 사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조계종이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보이면 좋을 텐데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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