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며 비핵화 의지를 흐리자 미 백악관에서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세기의 회담’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정치적 낭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참모들과 회담 진행을 지속할지 여부를 놓고 연일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20일 전화통화를 한 것도 백악관에서 북미 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회담 개최에 따른 위험 부담을 계속 떠안을지 최근 며칠간 참모들에게 질문을 퍼부으며 압박했다고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지난주 남북고위급 회담의 전격 중지를 발표한 데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나서 북미 정상회담 재검토까지 주장한 데 대해 적잖이 놀라며 불쾌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주말인 19일 저녁(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전화 통화를 요구한 것도 김 부상의 발표와 문 대통령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다른 이유를 시급히 짚고 가려 했다는 후문이다.
NYT는 한미 정상 간 긴급 전화통화에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20일 미국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통화는 북한이 비핵화 합의 도출에 진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우려가 백악관 내에서 확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면서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계획이 복잡해진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WP에 “북한의 최근 태도는 문 대통령이 설명했던 것에서 꽤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며 “(태도 돌변이) 북한의 오래된 각본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재검토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쇼’가 계속 진행돼 나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WP도 “북미 회담의 실행 계획을 다루는 선발대가 싱가포르 현지에 이미 머무르고 있으며 회담 준비를 계속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협상의 복잡성을 잘 알지 못하는 반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 때문에 비핵화 협상의 결과물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NYT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약속을 하는 데 그칠 것으로 우려하는 백악관 참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이 반발한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주장했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주변에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되풀이하며 “북미 회담이 잘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는 발언을 자주 한다고 WP는 보도했다.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북미 회담 의제를 정하고 주요 이슈에 대해 마무리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북측 의도는 회담 전에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거나, 싱가포르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트럼프 탓으로 돌릴 명분을 축적해놓거나, 아니면 회담에서 완전히 발을 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