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근로단축 한달 앞 현장은 우왕좌왕]"충원·시설투자가 말처럼 쉽나...법 지키며 사업 가능할지 걱정"

"품질 저하·업무 차질·인력불균형 등 해결할 대안 없어"

'52시간 쥐어짜기'에 車·유통·은행 등 산업 전부문 신음

"수입만 줄어드는 상황 닥칠수도" 근로자들도 안절부절

현대모비스 천안공장에서 직원들이 부품 검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대비를 마친 곳은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현대모비스 등 몇몇 대형 부품사에 불과하고 다른 대부분 업체들은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경제 DB현대모비스 천안공장에서 직원들이 부품 검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대비를 마친 곳은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현대모비스 등 몇몇 대형 부품사에 불과하고 다른 대부분 업체들은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경제 DB



국내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현재 주야 10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한 조가 하루 8시간 정규근무와 2시간 잔업을 하고 주말에 특근을 8~10시간 한다. 이 회사 경영진은 주당 52시간 근무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아직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2시간 규정에 맞추려면 특근을 폐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완성차에 납품물량을 맞추지 못한다. 고용을 늘려 주말 근무자에게 평일 대체휴가를 주는 식으로 주 7일 공장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자금여유가 없다. 주말에만 일용직을 쓰자니 비숙련 노동 활용에 따른 품질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들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대단히 타이트하게 일한다”면서 “과연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들의 주당 52시간 근무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산업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이나 시설 투자를 단행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근무시간 단축은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인 수입이 줄어들까 걱정하고 있다.


정유·화학 업계는 2~3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공장 정기보수 등 특별한 시기에 52시간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탄력근무제인데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정기보수 때는 3개월인 탄력근무 기간 동안 평균 주당 52시간 근로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조 역시 대부분 탄력근무제 도입을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부 기업 노조들은 기존 4조3교대의 근무형태를 4조2교대나 5조3교대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어 주목된다. 노조 입장에서는 실질 임금 하락 없는 5조3교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노사 협의 과정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4조3교대로도 평상시라면 주 52시간 근로를 맞출 수 있다”면서 “5조3교대 도입은 2~3년 한 번 있는 이벤트 때문에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인력을 더 뽑으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극심한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조선 업계의 경우 당장 문제는 없다. 그러나 향후 수주가 늘어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업황 기복이 심한 특성을 고려하면 필요 인력을 그때그때 확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철강 업계도 일감이 몰리는 등 예외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문제가 걱정거리다. 현재까지는 탄력근무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익일 대휴 등 법에서 허락하는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원칙만 세워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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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으로 불리는 대형 스타트업들도 300인 이상에 대부분 해당돼 오는 7월부터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스타트업들에는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와 포괄임금제가 만연해 있지만 대다수 회사들은 마땅한 대책이 없다. 최근 위메프가 포괄임금제를 폐지했지만 스타트업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또한 포괄임금제를 유지한다고 해도 주당 52시간 근무를 초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추가 고용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 대형 스타트업 관계자는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자금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유통 업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백화점과 마트의 영업시간을 단축해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협력업체·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3개 점포의 개장시간을 늦추면서 식품매장은 제외시키기도 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식품 업계 역시 대응책을 확정하지 못했다. 한 빙과 업체 관계자는 “비수기에 인력이 남아도는데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성수기에 인력을 채용하는 게 쉽지 않다”며 업종별로 탄력적인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홈쇼핑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은행권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직무’를 두고 노사 간 이견이 크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에 따르면 사측은 대출, 전산, 인사, 홍보, 예·결산 심사, 운전 등을 52시간 예외직무로 두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노조 측은 “예외직무가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금융노조 핵심관계자는 “사측이 주 52시간제 예외직무 적용을 확대하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초과근무가 이토록 많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면서 “은행권이 예외직무를 확대하기보다 신규 채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은 다음달 말에 열리는 은행연합회 이사회에 최종안을 올리는 게 목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산별중앙교섭에서 초과근무가 불가피한 부서를 어디까지로 합의할지가 각 은행의 최대 관심사”라고 전했다. 전산·콜센터·운전기사·자본시장 등 특수 분야 정도로 예외직무가 좁혀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성호·고병기·박준호·박진용·손구민기자 junpark@sedaily.com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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