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논의 재개로 가까스로 온기를 되찾은 국내 증시가 유럽연합(EU)에서 불어온 한파를 직격으로 맞으면서 30일 크게 휘청거렸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경기회복 전망이 더해져 발길을 국내로 돌릴 것으로 기대했던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날 현물과 선물을 대거 팔아치우며 국내 증시에서 한발 물러나는 분위기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은 6,608억원 규모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는 최근 순매도 규모 중 지난달 25일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3%를 넘어섰을 당시 순매도 기록인 7,657억원에 가장 근접한 수치다. 지난 28일부터 3일 동안 순매도 금액이 1조503억원에 달한다. 그만큼 시장이 받은 충격이 컸다는 의미다. 이날 기관 역시 4,290억원을 순매도하며 코스피 지수는 장중 한때 2,400선이 붕괴되기도 했지만 막판 2,409.03을 기록하며 2,400대를 ‘턱걸이’로 지켜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남북에 이은 북미회담까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가 이번에는 다르다는 분위기다. 코스피에만 1조79억원 어치를 순매수하며 외인과 기관이 던진 물량을 대부분 받아낸 것으로 분석된다. 개인이 1조원 이상 코스피에서 사들인 것은 2011년 8월10일 이후 6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들이 강한 매도세를 보이며 이날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 중 SK하이닉스(0.21%)와 삼성생명(0.94%), LG생활건강(0.07%), 기아차(0.16%), 현대제철(0.32%) 5개 종목을 빼고는 모두 하락세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 주가의 경우 최근 회복한 5만원이 다시 깨졌다. 불과 이틀 전(28일) 상한가가 무려 64개나 속출했던 경협주 역시 이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이날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4.14포인트(0.48%) 오른 874.22를 기록하며 상승 마감했다. 최근 경협주 랠리에 밀려 주춤했던 제약·바이오주가 오름세를 이어가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30일은 개인이 이끌고 만든 시장인 셈이다.
이날 코스피 급락은 이탈리아 정국 불안이 부추긴 ‘유로존 위기’ 탓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탈리아 사태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때처럼 확대될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겠으나 해결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미중 무역갈등 재개 우려에 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됐다.
외국인 이탈을 부추겼던 달러 강세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사태로 지수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예상보다 매우 심해지는 등 시장이 받은 영향은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로존의 약세가 지속할 수밖에 없어 최소 한두 달 정도 현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윤 센터장은 또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도 늦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외국인은 이날 선물 역시 1조3,33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당분간 국내 증시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일시적인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증권은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 이후 보다 구체적인 경제 협력이 논의되면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을 키웠지만 오는 11월 미국 의회 중간선거를 앞둔 만큼 6월을 기점으로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될 것”이라며 “중미 무역분쟁, 북미 비핵화 협상 등이 타결되고 2·4분기에도 반도체·석유제품·승용차 등의 수출이 두자릿수의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코스피지수가 연고점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업 이익의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219조원으로 전년보다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밖에 신흥국 증시의 출렁임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보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다음달 미국 기준금리 인상, 유럽의 경제지표 부진과 달러 강세가 오는 7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신흥국 수급이 단기적으로 불안정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그동안 신흥국들이 단기 외채 비중을 줄이고 외화보유액을 늘려온 점, 높은 경제 성장·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와 같은 증시 발작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조양준·유주희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