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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싱글라이프] TV 속 썸남썸녀에 괜스레 두근두근..골아픈 현실 연애보다 더 달달하네~

■ 지친 연애세포 달래줄 '리얼리티 프로'에 빠진 청춘

채널A ‘하트시그널2’채널A ‘하트시그널2’



# 사흘째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면 기운이 날까 싶어 연락했는데 하필 회식이란다. ‘내일 만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주말 아침부터 울리는 전화벨 너머 남친의 목소리는 반갑지가 않다. 나가기도 귀찮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을 때는 그가 바쁘고, 그가 원할 때는 내가 내키지 않는 게 반복되면서 우린 헤어졌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침대에 기댄 채 TV를 켜니 키도 크고 잘생긴 사내들과 ‘여자여자’한 외모의 여성들이 한 집에 모여 알콩달콩 ‘썸’을 타고 있다. 이게 아까 점심시간에 회사 사람들이 말하던 ‘하트시그널2’라는 프로그램인가 보다. 시즌1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시즌2란다. 다음에는 묵언수행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심정에 억지로 TV 채널을 붙들었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이런 감정, 오랜만이다. 남자 출연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내 심장이 콩당콩당 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애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얼마 만의 설렘인지….


마치 그 자리 함께하듯 어느 순간 몰입

출연자 평가하고 뒷담화 재미도 쏠쏠

현실성 떨어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보다

주변 ‘있을만한’ 일반인에게 마음 뺏겨



TV 채널을 돌리면 연애 프로그램이 싱글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채널A의 하트시그널2를 비롯해 tvN의 ‘선다방’, SBS의 ‘로맨스패키지’까지 종편·케이블·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인의 ‘짝짓기’ 콘셉트의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늘 있어왔지만 요즘처럼 뜨거운 적은 없다. SBS가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3년간 방송했지만 잇따르는 출연진의 구설수 등으로 막을 내렸고 그 후에는 ‘먹방’ 육아, 여행 등의 콘셉트가 대세였다.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비슷한 유형의 프로그램이 2~3개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왜 나는 TV 속 그들과 연애에 빠졌을까. 마치 내가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는 이유가 뭘까.


결혼적령기를 앞둔 2030세대들이 한창 연애에 빠져 있을 법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사는 데 지쳐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은 ‘자기애’가 강한 싱글들이 굳이 나의 물질적·정신적 여유를 희생하면서까지 연애를 원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싱글이 낫지 누군가에게 맞춰가며 살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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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혼자 사는 내 마음까지 메말라버린 것은 아니다. 나도 언제든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뛰고 설레기도 한다. “드라마는 점점 막장으로 가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데 이런 연애 리얼리티는 일반인들이 나오니까 ‘나한테도 저런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심리가 있다”고 A씨는 말한다. 물론 평균 이상의 일반인도 많다. 해외 유학파에 한의사, 행정고시 합격 예비 공무원, 배우지망생, 외국계 회사 마케팅 담당 직원처럼 선망하는 직업군도 있고 평균 이상의 외모와 몸매까지. 그렇다고 아예 동떨어진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남자 주인공도 그나마 평범해 보이는 정해인이 맡아 더 현실감 있고 감정이입도 됐다고 말한다. 진짜 내 친구 동생 같고 나도 그렇게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쨌거나 화면 속 남녀들과 ‘썸’을 타고 연애하는 것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가능하다.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되니 내 시간을 뺏기지도 않고 감정이 상할 이유도 없다. 싸움구경·불구경만큼이나 남의 연애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재미나지 않은가. 선다방에 마주 앉은 남자 또는 여자에게 참견하고 연애 코칭을 하며 나도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다자 구도인 하트시그널이나 로맨스패키지는 출연자의 면면을 살피며 나라면 누구를 선택할지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하나하나 알아나가야하는 소개팅 대신

스스로 주선자 돼 상대찾는 만남도 인기



남에게 맞춰가는 연애보다 내 마음만 행복하면 되는 쉬운 연애가 익숙하니 소개팅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마주 앉을 상대가 누구일지 호기심을 갖고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런 소개팅은 이제 피곤하다. 멋지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신경 쓰고 나갔는데 뻔한 호구조사에 신변잡기나 묻다가 시간 때우기로 끝나기 일쑤다. 소개팅에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다. 주선자 볼 면목도 없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요즘 싱글들은 ‘셀소’가 유행이다. 셀프 소개팅, 즉 자신이 주선자가 돼 상대를 찾는 것이다. 블라인드 같은 익명 게시판에 스스로 자기 소개글을 올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들과 쪽지를 주고받은 후에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만나는 거다.

이마저도 안 되면 정말 사이버상의 인공지능과 연애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그녀(HER)’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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