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예의를 지킵시다] "이부망천" "미친X" 위험수위 넘은 막말 국회…'불신·혐오의 표상'

<9>정치 언격(言格)을 높이자

생중계되는 회의서 "겐세이 놓은 겁니까"

정태옥 '지역 비하' 발언에 자진탈당

정체성 담을 黨 논평은 감정 배설구 전락

毒만 품은 정치인 등원정지 등 제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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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혀가 내뱉는 말을 살피라 했다. 말은 개인의 인격과 성품·가치관이 집약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국가 중대사를 논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말’은 그러나 그 품격을 논하기에 한없이 가볍거나 도를 넘어 독할 뿐이다. 정치불신과 혐오를 막기 위해 발언제한이나 등원정지 같은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 더 나아가 한국 정치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막말 행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 ‘겐세이(견제)’ 놓으신 거 아닙니까?”

사적 대화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이 곳곳에서 기록하고 생중계되는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월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 중 실언을 했다. 김 부총리의 서울 강남 집 매각 여부를 두고 질타하던 이 의원은 유성엽 교문위원장이 “차분하게 질의하라”고 하자 “차분하게 하는데 계속 중간에서 겐세이 놓은 거 아니냐”고 대꾸했다. 이 장면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정태옥 한국당 의원은 최근 한 방송 뉴스에 출연해 인천과 경기 부천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결국 자진 탈당했다. 그가 수도권 판세를 설명하며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 부천에서 살기 어려워지면 다시 인천으로 간다”고 내뱉은 말은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으며 해당 지역 주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경기지사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그가 과거 주변인들에게 퍼부었던 욕설과 막말들이 부메랑이 돼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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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막말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19대 국회의 회의록검색 시스템과 주요 일간지·방송 및 통신기사를 통해 분석한 ‘국회의원 막말 현황’에 따르면 한 차례 이상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의원은 73명에 달했다. 막말 대상은 동료의원이 36회로 가장 많았고 전현직 대통령 26회, 국무위원 혹은 공직(후보)자 22회였다. 일반 국민을 향한 막말도 11회에 달했다. 20대 국회라고 다를 바는 없다. 회의 도중 “닥쳐, 이 XX야”라고 외치는가 하면 장외집회에서 대통령에게 “미친X”이라는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가 출석하는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는 막말·고성·호통이 연관 검색어로 된 지 오래다.

더 독하고 센 발언이 주목받는 국회 환경은 이 같은 ‘말의 전쟁’을 부추긴다. 실제로 ‘겐세이’ 발언 다음날 한국당 의원들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의원을 “20대 국회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치켜세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치도 유권자도 양분화돼 있고 이렇다 보니 막말을 해도 ‘내 편’은 환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어차피 상대(편 지지자)가 나를 뽑는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누군가를 비방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의 막말은 당의 공식 입장인 ‘논평’으로까지 옮겨붙었다. 당의 정체성과 방향을 담는 그릇이 원색적 표현과 비방 일색의 배설구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당은 이른바 ‘미친개’ 논평으로 홍역을 치렀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한국당 소속 김기현 울산시장의 지방선거 공천 확정 직후 경찰이 김 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자 논평을 내고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비판하는 정의당의 논평도 정제돼 있지는 않았다. 최석 대변인은 한국당 대변인들을 겨냥해 “입으로 대변(代辯)하랬더니 입으로 대변(大便)을 배설하고 있다”며 “항문외과에 가서 구강을 보여주고 정밀검진을 받으라”고 질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는 가운데 ‘무책임한 SNS 발언’도 늘어나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노출되는 SNS 특성상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치인의 실언은 무분별하게 유통된다. 실제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여당 최고의 선대본부장’이라고 썼다가 논란이 되자 해당 문장을 지웠고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부싸움 후 자살했다’는 문장이 포함된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정치인들의 이 같은 막말은 관심·주목을 먹고 사는 정치의 특성과 유권자의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지도가 높거나 존경을 많이 받으면 스스로 자중할 줄 안다”며 “있는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의 경우 조급하니 그런 언술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도 “콘텐츠·철학·비전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관심을 받기 위해 직접적인 방법을 쓴다”며 “문제는 관심을 넘어서 매력으로 가는 요소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주희·양지윤기자 ssong@sedaily.com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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