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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후산부, 동구씨']탄광에 갇힌 광부…느긋한 구조반…무너진 신뢰사회 속 처절한 생존기

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탄광에 갇히 4명의 광부는 대대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했다는 작업반장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그러나 바깥에선 의미 없는 회의만 이어진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탄광에 갇히 4명의 광부는 대대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했다는 작업반장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그러나 바깥에선 의미 없는 회의만 이어진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




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사고 후 보름이 지나자 후산부 동구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사고 후 보름이 지나자 후산부 동구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


연극 ‘후산부, 동구씨’에서 4명의 악사는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각종 우리악기로 극의 진행을 돕는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연극 ‘후산부, 동구씨’에서 4명의 악사는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각종 우리악기로 극의 진행을 돕는다.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불신의 DNA가 아로새겨졌다. ‘재난의 현장에서 국가는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우리가 발 딛고 있던 신뢰사회의 뿌리를 흔들었고 각자도생 사회의 씨앗을 뿌렸다. 이후 숱한 연극과 영화, 소설들이 재난의 현장에서 국가의 방조와 온갖 부조리 속에 희생되는 평범한 개인의 악몽을 담아냈다.

최근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개막한 연극 ‘후산부, 동구씨’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988년 충청남도의 ‘희락탄광’이라는 허구의 공간이다. 후산부는 탄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미숙련공으로 후산부인 동구는 선산부인 춘삼 아재, 만복 성님, 규봉 성님을 보조하는 막내 광부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 200m 갱도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4명의 광부가 갑작스러운 붕괴 사고로 갱도에 고립된다. 이후 벌어지는 장면들은 한 편의 촌극이다.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구조반은 회의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급기야 책임을 전가할 희생자를 찾는 데만 혈안이다. 그런데도 탄광에 갇힌 춘삼과 만복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바쁘신 분들인데 천천히 (구조)하시라”는 소리나 늘어놓는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은 진폐증을 앓고 있던 규봉이 숨을 거두면서부터다. 사고 후 20일이 지나도 구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구는 “살려달라 생지랄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바보천치처럼 굴기만 한다”며 선산부 성님들을 원망한다. 그런데도 만복은 “스스로 나오려 하지 마라. 가만히 대기하라”는 작업반장의 말을 상기하며 탈출을 시도하는 동구를 뜯어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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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나서야 탄광 사고에 눈을 돌린 각하 덕분에 유일한 생존자였던 동구는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선산부 세 사람은 탄광 깊숙이 묻힌 채 탄광 사고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만다.

고작 200m 땅 밑에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보다 앞서야 할 질문은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국심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목숨값을 바치고도 하찮게 버려졌느냐다. 극중 성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애국심’이나 ‘나라의 힘’ ‘나라의 동력’ 따위를 읊는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1967년 구봉광산 붕괴, 1982년 태백탄광 붕괴에서도 숱한 목숨이 땅 아래 묻혔다. 무너진 탄광은 신뢰가 무너진 오늘의 사회, 동구는 서툴고 미숙하지만 무너진 신뢰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다.

줄거리는 무겁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더 없이 경쾌하고 재치 있다. 장비 하나 들지 않고도 꽹과리와 북, 장구, 징 등 각종 악기 연주에 맞춰 석탄 캐는 모습을 마임으로 연출하는 장면에서 황이선 연출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소악기를 사용했던 초연과 달리 이번 무대에선 악사들이 무대 왼쪽에 자리 잡고 앉아 극의 진행을 이끈다. 춘삼, 만복, 규봉 역의 배우들이 탄광 속 희생자와 구조반을 번갈아 연기한 점도 부조리한 상황을 극적으로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

이번 연극은 올해부터 마포문화재단의 상주예술단체로 활동하게 된 공상집단 뚱딴지가 파트너로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뚱딴지와 마포문화재단은 오는 8월 이솝우화 재연에 이어 10월에는 신작 ‘아라발연작’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22일까지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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