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의 폭등은 선량한 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가는 가증할 일이다. 30평 되는 아파트가 1억원을 넘고 대형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것은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의 미래와 꿈과 설계를 빼앗아 가고 좌절감을 안겨주는 이런 부동산 투기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것이 나의 의지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4월 청와대 회의에서 이 같이 말하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지의 신도시 건설 계획을 꺼내놨다. 6공화국 출범 후부터 불거진 집값 폭등 문제가 정권 안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설된 1기 신도시는 현재 30년을 향하는 길목에 있다. 신(新)도시의 노후화 문제를 걱정할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 리모델링을 검토하는 등의 대안이 나오지만 수익성과 각종 법규 규제 문제로 사업의 진척은 더디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재건축 광풍’을 잠재운다는 명분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 탓에 아파트를 다시 짓는 것도 힘들게 됐다. 활력을 잃은 상업시설 등도 늘어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평촌신도시에 들어설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2018년 4월 분양, 2021년 6월 입주 예정)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도시재생을 화두로 꺼내들고 1기 신도시는 늙어가는 상황에서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 프로젝트는 기존 건물의 주된 기능을 변경해 재생의 새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늙어가는 1기 신도시...새 주거공간에 대한 수요 응축되다
주거복합단지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의 핵심기능은 주거다. 지하 7층~지상 43층으로 만들어질 이 건물에는 주거형 오피스텔 총 622실(전용 49∼84㎡)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 부지에는 당초부터 주거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땅은 평촌 최초의 백화점인 ‘뉴코아백화점’(NC백화점)이 있던 곳으로 상업지로 쓰였다. 하지만 뉴코아백화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근 대형 유통시설 등에 밀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이후 아웃렛 등으로 변신도 시도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는 초역세권의 알짜 땅이 애물단지가 돼버린 셈이다. 이에 NC 측은 매각을 결정했고 피데스개발이 매입해 주거복합시설로 재탄생시킨 것이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다. 그리고 지난 5월 입주자들을 모은 결과, 평균 105.3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소위 ‘대박’을 쳤다. 활력을 잃은 도심 공간에 주거 기능을 입혀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피데스개발은 상업지에 왜 주거 기능을 접목했을까? 이는 1기 신도시의 노후화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실제 지난해 경기연구원이 낸 보고서를 보면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을 포함한 경기도 내 택지지구 중 32%가 준공 20년 넘은 ‘노후 지구’로 집계될 정도로 신도시 노후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중이다. 김 대표는 “이전 30여 년 동안 새로운 공간들이 꾸준히 만들어졌지만 이제 바꿔야 할 때가 오고 있다”면서 “지금 시대에 디벨로퍼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신도시 재생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데스개발은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해당 부지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본격적인 개발 과정에 들어갔다. 이후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요 분석 조사 등을 진행했다. 평촌에서 새 주거시설 그 중에서도 중소형 주택을 원하는 수요가 상당히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피데스는 중소형 위주의 아파텔(아파트+오피스텔)을 계획했다. 오피스텔 단지에서 보기 힘든 고급 주민공동시설 등도 적용했다. 그 결과, 단지는 계약 시작 이틀 만에 ‘완판’됐다.
김 대표는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겠다는 도시재생은 결국 시민들이 원하고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면서 “개발 사업 자체가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발을 빼고 도시재생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거기능 접목한 복합단지...도시재생에서 한 축 될 것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의 프로젝트와 같이 기능을 다한 오피스, 상업시설에 주거기능을 입히는 ‘복합개발’(믹스드유즈·Mixed-Use)은 선진국에서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재생방식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소니타워’가 큰 사례로 꼽힌다. 기존 오피스 시설이었던 소니타워는 리모델링을 거쳐 콘도기능을 겸비한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 같은 방식이 주류로 떠오른 이유는 ‘도심회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과거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는 확장을 해나가면서 국가가 성장해 나가던 시대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신 인구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기존 인프라가 풍부한 도심으로 돌아가는 도심 회귀의 시기로 접어드는 중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지요다, 주오, 미나토 등 도쿄 도심 3구의 인구가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런 움직임에는 쉬운 출퇴근을 원하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거품경제기에 도쿄 외곽에 단독주택을 지어 나갔던 고소득 노인들이 문화생활이 편리하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도심 맨션(아파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처에서 벌어지는 까닭에 한 건물에 안에 다양한 기능이 집적되는 복합개발이 더 활기를 보일 것이라고 도시학자들과 부동산 개발업계에서 관측한다.
다만 국내에서 복합개발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피데스개발의 사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기존에 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사례도 있고 데이터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면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방식이라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주변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국내에서도 향후 도시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복합개발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김 대표는 내다본다. 피데스개발은 지난해 2018~2019년 주거공간 트렌드를 발표하면서 오래된 도심 오피스가 ‘상업시설+공유오피스+주거공간’ 등으로 함께 꾸려지는 방식을 대표적인 예시로 제시한 바 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