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돈 벌 때 인슈테크(보험+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미래를 대비해야죠. 또 성장이 정체된 국내에서 해외로, 개인시장에서 기업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은 17일 “지난달 중국에 갔더니 인슈테크가 우리보다 앞선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국내 보험산업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보험 가입률이 포화에 가까워졌고 전에 없던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보험산업은 위기에 처했다”면서 “4차 산업혁명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교류 활성화도 보험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직생활 당시 줄곧 보험 업무를 맡아 ‘운명’이 아닐까 생각했다던 그는 이제 보험개발원장으로서 보험업계의 ‘4차 산업혁명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달 임기의 반환점을 돈 그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만나 20년 이상 보험업계에 몸담은 소회를 들었다.
성 원장은 대뜸 지난달 26~28일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푸단대에서 열린 보험 관련 포럼에 참석했는데 자신이 상상하던 것을 중국이 이미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인공지능(AI)으로 자동차 출동사고 현장 사진을 판독해 수리비 견적을 내는 시스템을 구축해보자고 했더니 주위에서 ‘그게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에 가보니 개발 완료 단계는 아니지만 일부 차량 수리 견적시스템에서 완전 파손 여부는 구분하는 수준까지 도달해 놀랐다는 것이다. 성 원장은 “중국 최대 민간보험사인 핑안보험은 자사의 경쟁상대가 보험사가 아닌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새 기술에 투자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데 적극적”이라면서 “빅데이터와 AI 등 기술 연구개발비로 매년 매출액의 1%를 투자하고 연구 인력만도 2만여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이에 자극 받은 성 원장도 보험개발원의 ‘자동차 수리비 견적시스템(AOS)’에 이미지 인식,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사전준비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다음 달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인슈테크의 미래’라는 주제로 중국 베이징징유, 일본 미쓰이스미토모, 영국 트렉터블 등이 참여하는 국제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내외 이미지 인식 자동견적시스템 기술현황 조사도 진행하면서 해외의 AI 기술수준 및 기술동향도 파악했다.
성 원장은 일본 보험시장에 대해서도 ‘열공’ 중이다. 그는 “현재 우리 보험산업이 처한 환경이 일본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다시 일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을 겪고 있는 일본의 대응전략을 참고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일본 손해보험업계는 빅3로 완전히 재편됐으며 도쿄해상의 경우 해외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면서 해외 비즈니스가 절반 이상이 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또 “손보재팬은 실리콘밸리는 물론 사내에 디지털 랩을 만드는 등 생존을 위해 변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 원장은 “우리 금융기업들도 핀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실패하더라도 투자금을 날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공헌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보험사나 은행 가운데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지털 랩을 설치한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을 개탄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금융은 사람과 종이를 가지고 돈을 버는 일종의 라이선스 산업이었지만 핀테크 시대가 되면서 금융이 기술의 인큐베이터이자 투자자·후원자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들이 해외는 물론 국내에 인슈테크 랩을 만들어 이용하면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이자 ‘일자리 창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4차 산업혁명에 할애한 성 원장은 “34년 전인 1983년 보험개발원이 설립될 당시 누군가가 4차 산업혁명이 이렇게 올 줄 알고 만든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보험상품 개발에서부터 판매, 계약관리, 보험금 지급까지 보험 분야의 전 과정에 걸쳐 4차 산업과 관련된 일이 무궁무진하며 이 과정에서 보험개발원이 개별 보험사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AI·빅데이터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험권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험개발원과 기술연구소의 인적 구성을 보면 계리사·손해사정사·정보처리기사·자동차정비기사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맞는 인적 구성을 갖췄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활용도 성 원장의 관심사 중 하나다. 그는 “보험산업에서의 데이터는 원유와도 같은 귀중한 자원”이라면서 “은행들이 보유한 2,000만~3,000만명의 고객 정보와 생명보험 대형 4사의 1,000만명 고객 정보를 잘 관리하면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 역시 일본처럼 비식별화해 서로 공유할 경우 더 큰 시너지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인구가 고령화되고 만성질환자도 증가하고 있어 유병자에 대한 보험의 보장 니즈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유병자 보험 상품을 개발하려면 이들의 건강상태에 따른 정확한 위험도 변화를 계량화해야 하기 때문에 신뢰성과 충분한 통계량이 확보된 건강보험공단 등의 공공 데이터 사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지닌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새로운 보험 상품 개발에 활용한다면 ‘퍼플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각종 규제에 막힌 부분도 있다. 보험개발원은 지난해 전방충돌경고장치(FCWS), 차선이탈방지장치(LKAS) 등 12가지 첨단안전장치를 장착한 차량의 사고위험도를 측정해 자동차보험료 할인 요인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 당시 자동차보험 계약 및 사고정보와 자동차제작사(현대·기아차)의 첨단안전장치 정보를 결합한 빅데이터를 생성했는데 국토교통부의 활용승인을 받고 비식별화 조치를 했음에도 시민단체들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했다. 성 원장은 추가 연구를 못 하게 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성사되면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포화상태인 국내 보험시장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성 원장은 “남북 경협이 확대되면 도로·철도·항만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필요하고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보장받기 위해 건설공사보험·조립보험·기업휴지보험·배상책임보험 등 기업성보험 가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난 물동량의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비한 적하보험·선박보험 및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근재보험·상해보험과 함께 단기간 방문을 위한 여행자보험 등에 대한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국내 금리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2021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현재 보험사가 보유한 매도가능채권에서는 평가손실이 발생해 지급여력비율(RBC)은 하락하게 될 것”이라면서 “보유자산에서 매도가능채권 비중이 높고 자본이 충분치 않은 보험사는 RBC 관리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채권 발행 또는 잉여금의 내부유보율 확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RBC를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보험개발원은 IFRS17과 K-ICS가 보험산업에 안착 되도록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10개 보험회사와 함께 ARK시스템을 공동 개발해 현재 완성단계에 있으며 참여 보험사들이 각사의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단위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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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경북 영천 △대구 능인고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유타대 법대 졸업(JD) △1989년 제33회 행정고시 △1994년 재정경제원 보험제도담당관실 사무관 △2001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보험제도과 △2005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재경관 △2008년 기획재정부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2009년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 보험과장 △2012년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2016년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변호사 △2016년 보험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