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비슷한 시기에 코드원(국가원수 전용기)을 교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항공사에서 대통령전용기를 임차해 사용하는 우리는 임대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공언하며 국제외교무대에 데뷔한 북측은 성능이 떨어지는 전용기 교체가 시급한 실정이다. 북측이 새로운 전용기로 서방제, 특히 미국산 항공기를 구매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또 방탄차량 등을 해외까지 운반할 수송기 확보 역시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당장 대통령전용기 임차계약이 오는 2020년 3월 말로 만료된다. 전용기 운항을 맡은 공군은 내년 초의 정식 입찰공고를 앞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협조공문을 각각 보냈다. 공군은 엔진 개수(4발), 좌석 (200~210석 이상), 기령(5년 이내) 등 자격 요건을 제시하며 각사에 임대조건을 물었다. 기존 계약업체인 대한항공은 신규 구매와 기존 전용기 리스 연장으로 나눠 예상금액을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용기 구매의 두 가지 관전 포인트=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째 운용 방식. 구매와 리스 중에서 골라야 한다. 당초에는 직구매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현용 리스 방식(5년간 1,421억원)보다 직구매가 싸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가 지난해 국회에서 인용되며 직구매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안전 문제뿐 아니라 움직이는 사무실이기 때문”이라면서도 “국회에서 논의해주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류가 다소 변하는 분위기다. 전용기 구매에 거액의 예산을 쓰는 게 눈치 보이고 야당이 협조할 것 같지도 않다고 판단했는지 리스하되 기체는 바꾸는 형식이 유력해지고 있다.
물론 직구매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리스에 비해 가격이 아주 저렴하거나 국회가 앞장선다는 조건을 둘 다 충족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전용기를 둘러싼 정쟁의 역사에 비춰볼 때 정치권이 쉽게 합의할지는 의문이다. 전용기 직구매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5년 말.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의 공군 1호기 보잉 737은 국내용이라며 전용기 직구매에 대해 운을 떼자 야당인 한나라당에 바로 반격에 나섰다. “지금 정부가 다음 정부의 대통령전용기를 챙겨줄 만큼 한가하고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경제를 살리는 데 전력하라”는 한나라당의 비판에 전용기 직구매 논의는 쏙 들어갔다.
여야의 입장은 불과 2년 반 만에 정반대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2008년 “현재 사용하는 전용기가 상당히 노후하고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가 위상에 비춰 볼 때 바꿔야 한다”고 밝혔으나 이번에는 민주당이 반대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 시절의 반대를 사과하면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졌으나 전용기 구매는 또다시 없던 일이 됐다. 환율이 올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대통령전용기는 애초의 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을 위해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의 전용기가 출입문 하단부 에어커버 장치 이상으로 인천공항에 긴급 회항하며 착륙 시 안전을 위해 서해상에서 항공유를 방출하는 사고까지 겪었다. 구매용역 예산안을 오는 2019년부터 반영하려면 여야 간 합의가 또다시 필요하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항공사 선정. 청와대는 양대 항공사뿐 아니라 저가항공사들에도 입찰기회를 줄 계획이지만 저가항공사의 경우 전용기로 활용할 만한 대형기가 없어 자연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남는다. 총수 일가의 땅콩 회항을 비롯한 갑질 논란이 대한항공 재지정에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대통령전용기를 운용하는 항공사라는 명예를 차지하기 위한 양대 항공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규모 커져 여야 논란 더욱 거세질 듯=‘전용기 3차전’에 해당하는 여야 간 논란은 여느 때보다 커질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전용기에서 주종을 차지하던 B747-400(한국·일본), B747-200(미국)을 B747-8이나 B-777로 교체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B-777은 엔진 4기가 아닌 쌍발로 청와대와 공군이 엔진의 조건을 쌍발로 내걸 경우 대상 기종이 보다 넓어질 수 있다. 여기에 대통령 전용헬기도 교체시한을 이미 넘겨 전체적으로 대통령이 전용할 대형여객기와 헬리콥터 도입에 들어갈 예산이 더욱 증액될 것으로 전망된다. 큰돈이 드는 만큼 여야 간 논란도 거세질 수 있다.
◇北에 뒤지는 수송기 추가 도입도 문제=대통령전용기로 구분되지 않고 예산도 청와대가 아니라 국방예산에 잡히는 항목이지만 수송기 추가 도입도 관심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탄차량을 북한에서 싱가포르까지 운송한 수송기가 옛소련제 IL-76. 김 위원장의 전용 방탄차(메르세데스벤츠 S600 풀만 가드)와 이동식 화장실 등을 실어날랐다.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방탄차를 수송한 C-130 J 슈퍼 허큘리스보다 크고 탑재량도 많으며 항속거리도 길다. 물론 슈퍼 허큘리스가 신형이지만 프로펠러 항공기라는 한계가 있다. IL-76 수송기는 한국도 ‘불곰사업’의 일환으로 러시아로부터 옛소련 차관 현물상환으로 받을 뻔했던 기체.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공군이 중장거리 수송용으로 주목했던 기체다.
정상의 외국 방문 시 치안이 불안할 경우 방탄차를 갖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슈퍼 허큘리스 4대가 전부다. 최근 유럽제 A-400M 수송기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나 이 역시 추진동력은 프로펠러. 당분간 이 문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미국제 C-141은 단종 상태이며 서방진영 중에서는 브라질과 일본이 제트수송기를 제작하는 정도다. 브라질의 KC-390은 개발이 덜 끝났고 일본 C-2 수송기는 국민 정서상 도입이 어려운 형편이라 전용물자 수송기의 남북 격차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北, 노후화 된 ‘참매1호’…‘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바꿀까
◇北, 미국제 항공기 구매할까=북한 유일의 민영항공사인 고려항공이 보유한 여객기는 모두 19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 비하면 초미니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옛소련제 계열이라는 사실이다. 공산권 국가라도 이처럼 러시아제에만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날아갈 때 빌려 탄 중국기가 미국제 B747-400이었다는 것이 좋은 사례다. 고립된 북한이 낡은 옛소련제 민항기에 의존한다는 현실은 가능성에서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만약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고 미국과 본격 교류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사들일 미국 공산품으로는 여객기가 유력하다.
미국 민간항공 업체 관계자는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진행된 마식령스키장이나 원산해수욕장 개발을 보면 북한이 관광과 위락단지 인프라 개발에 주력하는 것 같다”며 “본격 개방 시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여객기이며 미국제 여객기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미국 업체들은 중국처럼 코드원으로 미국제 여객기를 구매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무역분쟁, 핵 재협상 등으로 중국과 이란에서 대규모 수요가 증발할 위험에 빠진 미국 업체들로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북한이 미국 항공기 고객이 되더라도 수요는 크지 않겠지만 북한과 미국 관계 정상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사안이다. 러시아가 전통적 우방인 북한의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IL96-300 같은 대형기체를 저가임차 형식으로 넘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평화 분위기를 타고 북한의 여객기 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