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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영의 해외경매이야기] 피카소 '장미시대' 대표하는 고전주의 작품...1,241억원 기록적 낙찰가

피카소 '꽃바구니를 든 소녀'

입체주의 시기·자유로운 필치 후기 작품과 완전히 다른 화풍

지난해 사망 데이비드 록펠러 서재에 걸려있다 경매 나와

9월 개막 오르세미술관 '블루 앤드 로즈' 전시서 선보일듯





파블로 피카소 ‘꽃바구니를 든 소녀’는 지난 5월 열린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약 1,241억원에 낙찰돼 경매로 거래된 피카소 작품 중 2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사진제공=Christie‘s파블로 피카소 ‘꽃바구니를 든 소녀’는 지난 5월 열린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약 1,241억원에 낙찰돼 경매로 거래된 피카소 작품 중 2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사진제공=Christie‘s


벌써 올해의 절반이 지났고 글로벌 아트마켓에서는 상반기 경매시장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반기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를 빛낸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가 바로 ‘꽃바구니를 든 소녀’였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장미 시대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지난 5월 8일 뉴욕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장에서 1억1,500만달러(약 1,241억원)에 팔림으로써 지난 2015년 1억7,937만달러(약 2,025억원)에 팔린 ‘알제의 여인들’(1955년작)에 이어 경매를 통해 거래된 피카소의 작품 중 가격 순위 2위의 자리에 올랐다.


핑크색 리본과 목걸이로 장식한 어린 소녀가 붉은색 꽃이 담긴 바구니를 손에 안고 청회색조의 벽면 앞에 서서 시선을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피카소의 앞집에 살던 꽃 파는 소녀를 모델로 한 이 작품에서 소녀의 우수 어리면서도 강렬한 눈빛은 화면 상단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피카소 하면 떠오르는 입체주의 시기나 표현적이고 자유로운 필치를 보여주는 후기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고전주의적 화풍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피카소의 장미 시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피카소에게 있어 장미 시기는 ‘인간’ 피카소로서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 피카소로서도 장밋빛 희망의 불씨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스페인 말라가 출신으로 1900년 파리에 입성한 피카소는 당장 내일의 끼니조차 불확실한 가난한 예술가로 살고 있었으나, 1904년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이 모이던 몽마르트르의 빈민굴에서 그의 인생의 첫 여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1905년부터는 가난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며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던 청색시대(1901~1904)를 빠져나와 말 그대로 장밋빛인 장미시대(1905~1907)를 열게 된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 직전까지 집에 걸어두었던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 /사진출처=크리스티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 직전까지 집에 걸어두었던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 /사진출처=크리스티


이 시기 피카소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밋빛 만남이 있었다. 당시 유명한 문인이자 컬렉터였던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만남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많은 컬렉터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미 1900년대 초부터 그는 유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꽃바구니를 든 소녀’는 파리에 있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 수년간 걸려있었던 작품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1967년 소장품 가운데 38점의 피카소 작품들을 6명의 현대미술관(MoMA) 이사회 회원들에게 판매하기 위한 이벤트가 열렸고 데이비드 록펠러의 소장품이 돼 지난해 사망 시까지 그의 저택 서재에 걸려있었다. 유명한 컬렉터이자 석유재벌인 존 록펠러의 손자인 데이비드 록펠러는 당시 모자 안 제비 뽑기에서 운 좋게 순번 1번을 뽑아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그리고 이 작품을 포함한 그의 컬렉션은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단일 컬렉션 경매로는 최고가를 경신하며 총 8억3,000만달러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미술시장 분석 전문지인 ‘아트프라이스(Artprice)’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경매를 통해 거래된 피카소의 작품 총액은 4억4,640만달러(약 5,200억원)으로 이는 근대미술 영역에서 작년 한 해 거래된 총액인 41억 달러의 10%가 넘는 규모다. 미술시장에서 피카소의 강세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대부터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60대에는 백만장자였던 피카소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거래가와 거래량 모두에서 최고 수준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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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유는 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전설적인 위치다. 입체주의를 창시했고 아방가르드 미술의 핵심 인물로 동시대 및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그의 미술사적 위치는 난공불락이다. 두 번째로는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93년의 생애 중 80년 가까이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한 피카소는 하루에 한 점씩 그림을 그렸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매 순간 세계 어딘가에서 그의 작품이 거래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미술 시장에서 그의 작품들이 세운 기록적인 가격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인 수요공급 법칙에 따르면 시장에 공급이 많을 경우 가격이 떨어져야 하지만, 그림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수요자가 원할 때 작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한두 작품이 비싸게 팔렸다고 해도, 이후 가격 상승이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경우 대표 작품들이 고가에 낙찰되면 이후 시장에 나오는 다른 작품들의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 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술품의 기록적인 가격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유명 작가의 경우 전성기의 전형성을 보여주거나, 피카소의 청색 시대와 장미 시대처럼 희소성이 있을 경우, 그리고 소장처 및 전시이력 등이 말해주는 작품의 역사, 작품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꽃바구니를 든 소녀’의 1,241억원의 기록적 가격은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오는 9월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청색 시대와 장미 시대의 작품들로만 구성된 대형 전시 ‘블루 앤드 로즈’가 개막해 내년 1월까지 열릴 예정이다. 1900년부터 1906년 사이 제작된 작품으로만 채워질 이번 전시는 보험가액만도 수억 달러로 예상되면서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전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꽃바구니를 든 소녀’는 이 전시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서울옥션(063170) 국제팀 이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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