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내 개봉한 마블시리즈의 최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영화 시작부터 익숙한 차가 눈에 띈다. 앤트맨(스캇 랭)의 집 앞에 이혼한 아내가 딸을 태워가기 위해 세워둔 차는 현대자동차의 ‘코나’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근육질을 잘 다듬은 듯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등장한다. 또 다른 히어로인 호프 반 다인이 앤트맨을 신형 ‘싼타페’에 태우고 연구소로 이동한다. 물질의 크기가 양자 수준에서 빌딩 높이까지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세상이 앤트맨의 설정. 호프 반 다인은 리모컨으로 싼타페를 5㎝ 수준의 미니카로 줄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현대차(005380)의 해치백 ‘벨로스터’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미니카인 벨로스터가 갑자기 커지며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온 몸에 머플러에서 터지는 화염 문양을 프린팅한 ‘앤트맨 카’ 벨로스터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악당들과 도로의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다이나믹한 해치백 벨로스터의 정체성을 잘 살려준다. 물론 코나와 싼타페, 벨로스터는 모두 현대차의 마케팅 차원에서 나왔다.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Silent but Constant)’라는 전략으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마블시리즈를 선택한 배경은 한 번 터지면 전 세계 관객 수가 수 천 만명을 기록하는 폭발력에 있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 ‘앤트맨’ 등 각 시리즈가 어벤져스로 뭉치는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 한 번 빠지면 꾸준히 다음 영화를 볼 가능성이 높다. 앞서 개봉한 ‘블랙팬서’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만 해도 국내 관객수가 각각 500만명, 1,100만명을 넘겼고 모두 전 세계에서 수 천 만명의 관객을 홀리며 흥행 영화 톱10에 들어갔다. 다음 시리즈인 앤트맨과 와스프도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셈이다. 무엇보다 마블시리즈는 현대차의 최대 시장인 북미와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모니크 컴피스(Monique Kumpis)는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며 “현대차는 젊은 세대의 잠재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스마트한 방법으로 브랜드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마블과 손잡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대차는 2015년 마블과 2년 계약을 맺고 ‘데어데블’ 시즌1과 ‘제시카 존스’ 등 작품에서 제네시스 ‘G80’과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등장시켰다. 고급차인 제네시스를 변호사와 탐정 등의 배역을 맡은 주인공이 타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이미지를 전달했다.
사실 제일 처음 마블시리즈의 덕을 톡톡히 본 완성차 브랜드는 아우디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 스타크가 타고 나온 차량은 아우디의 스포츠카 ‘R8’이다. 이후 아우디는 아이언맨2와 3, 어벤저스 에이지오브울트론 등에 자사의 차량을 꾸준히 등장시켜 강력한 주행 성능에 세련된 이미지까지 입혔다. 특히 아우디는 신형 모델을 마블시리즈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아우디의 플래그십 세단 ‘A8’은 스파이더맨 시리즈 홈커밍에 등장시켜 반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선보였다. 어벤저스 시빌 워에는 아우디의 대형 SUV ‘Q7’을 추격신에 투입해 차가 전복돼 수차례 도로 위에 굴러도 전체 차체가 큰 훼손 없이 버티는 강인함을 각인시켰다. 쉐보레의 스포츠카 ‘콜벳’ 역시 시빌 워에서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가 타고 나오기도 했다. 닥터스트레인지에서는 람보르기니의 슈퍼카 ‘우라칸’이 등장하기도 한다.
점잖은 이미지인 렉서스도 최근에 마블시리즈에 뛰어들었다. 영화 블랙팬서에서 자갈치시장과 광안대교, 해운대의 도로를 질주하는 추격신은 렉서스의 스포츠카 ‘LC500’이 책임졌다. 깊은 바다를 담은 듯한 파란색의 LC500은 총탄을 튕겨내며 도로 위를 거칠게 달린다.
아우디의 성공에 현대차와 렉서스가 마블시리즈에 손을 내밀었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다른 길을 걸었다. 벤츠는 마블시리즈의 경쟁 영화인 DC유니버스 작품 ‘저스티스 리그’에서 ‘AMG 비전 그란투리스모’를 선보였다. 같은 DC유니버스 시리즈의 영화 ‘원더우먼’에서 주인공 원더우먼(갤가돗)은 E 클래스 카브리올레 모델을 탔다. 하지만 마블시리즈의 아우디만큼 영화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BMW는 또 다른 길을 걷는다. BMW의 고성능 스포츠세단 ‘뉴 M5’는 7월 개봉할 ‘미션임파서블: 폴 아웃’에 등장해 강력한 퍼포먼스로 스크린을 수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