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시험지 유출사건이 발생한 광주의 모 고등학교에서 피의자인 학교 행정실장과 학부모가 30분간 밀담을 나눈 뒤 하루 만에 범행을 행동에 옮긴 것을 확인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행정실장 A(58)씨와 학부모 B(52·여)씨가 지난 1일 오후 5시께 광주 남구 노대동 한 카페에서 약 30분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두 사람이 이날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카페에서의 만남과 시험지 유출 요구는 학부모 B씨가 행정실장인 A씨에게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학교운영위원장인 B씨의 영향력과 부모로서 딱한 처지를 봐서 요구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의사인 B씨는 아들을 의대에 보내기를 원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정년퇴직을 불과 2년여 남겨둔 A씨의 범행동기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금품이 오간 정황을 파악 중이다.
경찰이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카페에서 만남이 이뤄지는 동안 A씨는 B씨에게 작은 크기의 쪽지를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쪽지에 담긴 내용을 파악 중이다.
A씨는 카페에서 B씨를 만나고 하루 뒤인 2일 오후 5시 30분께 학교 행정실 맞은편 등사실에 보관된 3학년 이과 기말고사 시험지 9과목을 빼돌렸다. 그리고 시험지 원안을 행정실로 가져와서 복사기로 인쇄했다. A씨는 시험지 복사본을 2일 오후 6시 30분께 노대동 카페 근처 도로에서 자동차를 잠시 세워두고 B씨에게 전달했다. 경찰은 중간고사 시험지도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시험지 복사본을 집에서 컴퓨터 문서로 재가공했고 수험생인 아들에게는 ‘족보’라면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시험지 원안을 복사할 때 협력했거나 복사본을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외부인이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행정실장인 A씨가 시험지 유출 요구에 응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학교 관계자가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A씨와 B씨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으며 등사실 직원, 학교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A씨가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올해 4월 학교에 발전기금 300만원을 전달한 정황 등을 토대로 시험지 유출이 구조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수사할 방침이다. /장유정인턴기자 wkd1326@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