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정부는 이날 우리 영해를 지나는 ‘스카이에인절호’와 ‘리치글로리호’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최대한 신중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북대화 국면에서 자칫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신중모드로 있다가는 미국은 물론 서방에서도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에 무관심하다는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20일 미국 워싱턴DC에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이 워싱턴DC 방문을 위해 20일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의 방미는 지난 5월 초 미북 정상회담 논의차 워싱턴DC를 찾은 후 3개월여 만이다. 미북 간 비핵화 논의의 진전이 더딘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 논란과 관련한 설명을 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모두 만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언론은 미 소식통을 인용, “청와대가 북한 석탄 반입과 관련해 사전에 미국 측에 알렸지만 논의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생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8월 북한의 석탄을 비롯해 광물을 대상으로 전면 수출금지 조치를 취하는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이어 12월에는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서 불법활동에 가담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선박이 입항하거나 자국 영해를 통과할 경우 억류와 조사, 자산동결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단순히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선박을 억류할 수는 없다”며 “안보리 결의안에서 규정한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조사가 이뤄지는 게 먼저”라는 입장을 반복해 논란을 샀다. 이 관계자는 석탄을 옮겼을 뿐인 선박의 범법행위보다 수입업자의 위법 혐의를 입증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강조했다. 관세청은 외교부가 지난해 10월 문제 선박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아직 조사를 마치지 않아 조사에 소극적으로 임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해당 선박들에 대한 조사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면서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 석탄이 우리나라로 유입됐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석탄화력발전소인 남동발전 영동화력발전소와 동서발전 동해화력발전소에 북한의 석탄이 사용됐는지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남동발전의 경우 과거 포항항을 통해 무연탄을 수입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석탄을 나른 스카이에인절호와 리치글로리호 등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인천항과 포항항을 드나들었다.
한편 한국은행은 2017년 북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1997년 ‘고난의 행군’ 당시 기록한 ‘-6.5%’ 성장률 이후 최저치다. 특히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석탄의 수출이 막히면서 북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