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중퇴, 무명의 춤꾼’. 이상윤 SF이노베이션 대표를 따라다니는 이들 수식어는 현재의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이 대표는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 스쿨푸드를 포함해 외식 브랜드 8개를 보유한 매출 500억원의 외식기업 수장으로 성장했다. 분식 배달이 없던 시절에 김밥 배달을 통해 ‘배달 전문점’의 트렌드를 만들었고 스팸마리·계란마리·오징어먹물마리 등 김밥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표적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인 이 대표를 최근 역삼동 본사에서 만났다.
유년기 부모님 빚더미로 가족과 생이별
‘살아야겠다’ 중퇴…신문 돌리며 주방일
춤에 매료 ‘가수 길’ 갔지만 결핵에 포기
종잣돈 500만원으로 ‘김밥 배달’ 올인
◇ 프리미엄 분식 1세대…재료와 품질이 생명=스쿨푸드는 프리미엄 분식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론칭 때부터 주목받았다. 이 대표가 생명처럼 여긴 품질은 지금의 스쿨푸드를 만들었다. 200㎖에 5만원인 ‘먹물(오징어먹물마리)’을 쓰고 국산 고급멸치, CJ 오리지널 스팸, 제철 청량고추, 대학교수들이 개발한 신동진쌀 등 고급 재료로 맛을 낸다.
“심지어 국물 떡볶이 고추장은 태양초 골드 고추장을 썼어요. 주변에서 분식을 팔면서 이 비싼 것을 왜 쓰냐고 했죠. 맛으로 승부를 해야 하니까요. 현재 원가 비중이 35%에 달합니다.” 그는 “초창기 고가의 르쿠르제 냄비에 라면을 담거나 하는 프리미엄 분식의 콘셉트는 어릴 적 고급스러워 보였던 카페형 레스토랑 ‘벤’에 대한 기억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여전히 품질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원물을 토대로 만든 소스는 자그마치 80여가지. 메뉴마다 다른 소스를 전처리해 매장에서 신선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떡볶이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전 세계 고추에 푹 빠져 살다 고춧가루 브랜드를 낼 뻔하기도 했다.
스쿨푸드 신메뉴 개발에 골몰하다 급기야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기에 이른다. ‘김작가의 이중생활’ ‘분짜라붐’ ‘판다익스프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뉴브랜드만 담당하는 계열사 ‘별동부대’도 그래서 생겨났다. 이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준비해주는 회사가 바로 별동부대”라며 “기존 브랜드를 업그레이드시키고 테스팅하고 가맹사업 수익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별동부대가 들어서고 신규 브랜드 3개가 태어났다.
◇ 배달 비즈니스 전문점을 다시 꿈꾸다=스쿨푸드는 특수상권까지 포함해 오프라인 매장 50곳, 딜리버리 30곳을 운영하고 있다. 스쿨푸드의 시작이 배달인 만큼 현재 직영인 스쿨푸드 딜리버리 가맹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그는 “배달 시장을 보면 피자·치킨·보쌈은 경쟁이 심한데 스쿨푸드는 17년 노하우, 맛, 레시피를 독보적으로 갖춘 지속 가능한 브랜드”라며 “딜리버리로 강남에서만 점당 매출 월 최고 4억원, 연 230억원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도네시아·홍콩 등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김작가의 이중생활’도 뉴욕 입성을 앞두고 있다. 특히 스쿨푸드의 홍콩 진출은 드라마틱하게 이뤄졌다. 2010년 핸더슨그룹을 모회사로 둔 홍콩 재계 3위 미라마그룹의 마틴리 회장이 직접 방한했다. 마틴리 회장은 목동 현대백화점에서 2~3개 메뉴를 먹어본 후 홍콩으로 돌아가 7개월이 지나 홍콩 타임스스퀘어점을 오픈하자는 제의를 했다.
“마틴리 회장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와이프가 연예인이고 경호원들과 지하로만 다닌다고 하더군요. 유명세 덕분에 스쿨푸드 타임스스퀘어점은 잘 나갈 때는 2시간씩 줄이 이어졌죠.”
◇ 불우했던 과거…현재의 그를 만들다=그는 11세 때 어머니, 아버지, 다섯 살 터울 형과 생이별을 했다. 집에 보탬이 되려고 부동산 일을 보다가 일이 잘못 돼 경제적 궁핍을 안겨준 어머니는 이혼을 당해 그의 곁을 떠났고 아버지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외국으로 도주했다. 형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가족을 떠나 사회로 갔으니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소년은 일찌감치 생존과 싸워야 했다.
수돗물로 매일 점심 공복을 달랬고 그렇게 배고픔은 가장 큰 두려움이 됐다. 일단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니 중학교 2학년 때 자연스럽게 학업을 놓았다. 쪽잠을 자면서 신문 배달을 하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새벽에는 신문 배달을 하고 형이 일하던 이태원 레스토랑 ‘벤’이라는 곳에서 주방일·서빙일을 돕던 중 자연스럽게 춤과 인연을 맺었다.
“뉴용산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 몰래 들어갔다 ‘철이와 미애’의 춤에 매료돼 레스토랑 ‘벤’을 그만두고 춤을 추게 됐어요. 당시 댄스 시장에는 박남정·양현석·이주노·현진영·도건우 등이 있었는데 함께했던 이들은 가수의 길을 가게 됐지만 저는 결핵이 오면서 춤도 그만두게 됐죠. 몸에 영양분이 워낙 없던 탓에 늑막에 결핵이 오면서 과격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또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던 33세에 이 대표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가. 그는 아이 넷을 낳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분식도 배달’ 혁신 통해…메뉴도 다변화
고급 식재료 승부, 입소문 타며 대박행진
매출 500억 기업으로…신브랜드 론칭도
이젠 ‘쌈장 활용, 한식 세계화’ 꿈 키우죠
◇ 돈이 없어 시작한 배달이 ‘혁신’으로=스쿨푸드의 모태는 ‘노다지 김밥’이었다. 2002년 500만원의 종잣돈으로 논현동 장미빌라의 15평짜리 반지하방에서 계란말이 김밥 한 가지만 가지고 야식 배달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기존 김밥의 3분의1 크기에 분홍소시지·시금치·단무지를 속 재료로 넣었고 겉은 계란으로 둘렀다. 봉천동 할머니의 김밥을 벤치마킹해 ‘장아찌’도 곁들였다. 잘 물리는 기존 김밥과 달리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에다 ‘김밥 배달’은 당시 혁신적이었다. 스쿨푸드는 요즘 불고 있는 배달 트렌드를 이미 십수년 전에 미리 본 것이다.
“우리는 돈이 없어 배달을 시작했는데 그게 새로운 시장을 열지 누가 알았겠어요. 15년 전 배달 전문 비즈니스를 시작한 거죠. 단골손님이 늘면서 오뎅탕·국물떡볶이·오징어먹물마리·꿀떡맛탕 등 메뉴도 개발하기 시작했죠.”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초기 투자비를 모두 뽑고 3년 만에 가로수길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면서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당시 가로수길은 점심에 사람이 5명 지나갈 정도로 허허벌판이었다. 그런데 대박이 났다. 2층까지 터서 장사를 하던 중 건물주가 월세를 7,000만원까지 올리는 바람에 지금의 2층 가로수길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회고했다.
◇세상 사람의 한 끼를 스쿨푸드로=“음식 비즈니스를 ‘보시(布施)’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명함 뒷면에는 ‘당신의 입속에 꿈을 담아 드립니다’라는 글귀를 넣었죠. 어릴 때 늘 혼자 밥을 먹고 굶었던 저는 수많은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을 드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때우려고 먹는 게 아니라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먹지 못해 생사를 다투고 생명과 직결된 삶을 살다 보니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먹는 것 때문에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삶을 만들고 싶어요.”
신메뉴의 상당수가 이 대표에서 나올 만큼 그의 머릿속은 항상 창의적인 메뉴로 가득 차 있다. “춤을 창작했던 것처럼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직원들에게 상상에서 나온 메뉴를 던지고 이를 현실 속에서 체계화하라고 하니 직원들이 고충이 많죠. 직원들이 이 회사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제 몫입니다.” 이 대표는 “500억원에 직원 60명까지가 창업주 혼자 열정으로 키울 수 있는 한계”라며 “1,000억원을 향해서는 직원과 하나가 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꿈은 한식의 세계화다. 한식의 ‘쌈장’을 모티브로 해 해외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7~8위를 차지하는 멕시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치폴렛’과 같은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쌈장을 활용한 한국 음식을 테이크아웃 핑거푸드로 시스템화시켜 큰일을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송은석기자
이상윤 대표 프로필
△1968년 부산 △1982년 중동중 2년 중퇴 △1984년 비보이 활동 △1997년 4인조 혼성그룹 ‘C4’로 데뷔 △2002년 노다지 김밥 론칭 △2005년 프리미엄 분식 브랜드 ‘스쿨푸드’ 가로수길 1호점 론칭 △현 SF이노베이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