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자녀 둘과 사는 A 씨. 밤에도 30도를 뛰어넘는 무더위에 이달부터 에어컨 사용을 늘렸다. 7월 전력사용량은 540KW로 지난 6월 사용량 340KW보다 58% 늘어났다. 예상 전기요금은 11만 6,900원. 6월 요금(5만 2,940원)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누진제로 인해 사용량 증가 폭보다 전기요금 증가 폭이 더 큰 것이다. 최악의 폭염으로 가정 냉방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누진제에 따른 ‘전기요금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29일 청와대에 등록된 누진제 폐지 청원 건수는 331건에 달했다. 하지만 누진제 폐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한전 재무구조 악화, 탈원전 정책과의 충돌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당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전기요금 폭탄 속출하나= 20년 만에 무더위가 덮친 2016년. 정부는 6단계인 전기요금 누진체계를 3단계로 개편했다. 이에 따라 1단계와 최상위단계의 누진율은 11.7배에서 3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해 한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올해 찾아오면서 전기요금 부담은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올해 7월 가정의 전력소비량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전망치마저 뛰어넘은 최대전력 수요를 감안하면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전력공사는 가정의 평균 에어컨 사용량인 3.5시간보다 2시간 더 에어컨을 사용하면 전기요금이 9만8,000원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폐지 땐 산업용 전기요금·저소득층 부담 커질 우려=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누진제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이 된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은 “누진제를 개편한 것이 2년도 채 되지 않았다”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으로부터 최근 전력사용량에 따른 전기요금 현황 등은 보고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권이 누진제 폐지에 소극적인 이유는 가정용 전기요금이 싸지면 반대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완화 활 당시에도 누진제 완화 측 입장은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혜택을 줄인다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율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분기 설비투자가 6.6% 감소하는 등 국내 산업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엔 산업부도 반대하는 상황이다. 또 누진제 폐지시 1KW 당 전기요금 단가가 올라 전력소비량이 적은 저소득층의 부담이 높아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여름철에 한해 누진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입법예고 하는 등 혹서기 누진제 폐지 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탈원전인데…값싼 전기 확보 딜레마도=문재인 정부는 값싼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탈원전’과 전기요금 인상 불가라는 두 가지 상충된 정책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고유가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이 최근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자 김종갑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력사용 증가율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탈원전 정책만 있을 뿐 탈원전의 ‘브릿지’를 담당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확보 방안 등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이 누진제 폐지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전기요금 인상 요인만 가득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