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을 검토하면서 국내 백신 시장을 양분해온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006280)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앞서 세계 두 번째로 대상포진 백신 상용화에 성공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GC녹십자는 최근 대상포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당분간 주도권을 내줘야 하는 신세가 됐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내년 상반기 중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고령화로 대상포진에 걸리는 노년층이 늘자 백신 무료접종을 통해 의료복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질본은 매년 만 65세를 맞는 노인 전원에게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면 연간 최대 65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정부의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 추진에 지난해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를 상용화한 SK바이오사이언스(옛 SK케미칼(285130) 백신사업부)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카이조스터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 두번째로 개발한 대상포진 백신이다. 연구개발 기간만 10여년이 걸린 제품으로 지난해 11월 국내 출시 후 시장점유율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GC녹십자는 지난 5월부터 대상포진 백신 ‘CRV-101’의 상용화를 위한 임상시험에 나선 상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한 현지법인 큐레보가 임상시험을 담당하며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시장 공략을 최우선 목표로 걸었다. 기존 제품보다 효능이 우수하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이지만 빨라야 2020년 이후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대상포진 백신은 다국적 제약사 MSD가 지난 2006년 ‘조스터박스’를 세계 최초로 출시한 이래 10년 넘게 시장을 독점해왔다. 다른 질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자 규모가 적고 보험적용도 되지 않아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이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15만원 안팎에 달하는 접종비용도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대상포진에 걸리는 노인들이 늘고 젊은 세대도 각종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환자가 급증하면서 대상포진은 차세대 백신 시장의 승부처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다국적 제약사 GSK가 예방률을 높인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를 미국에 출시하며 경쟁구도에 가세했다. 1회만 접종하는 기존 제품과 달리 2회를 접종해야 하고 가격도 회당 400달러(약 45만원)에 달하지만 미국 노년층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대상포진은 몸안에 있는 수두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서 발병하는 질환이다. 어릴 때 수두 백신을 맞았던 사람은 언제든지 대상포진에 다시 걸릴 수 있다. 면역력 약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최근에는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 등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근육통을 동반하다가 피부에 수포가 생기면서 전신을 송곳으로 찌르를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 45만명 수준이었던 국내 대상포진 환자는 2014년 64만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71만명을 넘어섰다. 50대가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여성 환자가 10명 중 6명꼴로 남성보다 많다. 대상포진 환자의 치료비도 2015년 728억원에서 2017년 851억원으로 늘었다. 국내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지난 2016년 800억원 규모에서 올해 1,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상포진 백신은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지만 미리 접종하지 않으면 극심한 통증과 함께 피부에 흉터까지 남을 수 있어 이른바 ‘부자 백신’으로 불린다”며 “선진국도 대상포진 백신에 보험적용을 확대하는 추세여서 현재 8억달러 규모인 글로벌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앞으로 10년 내 2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