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의 두 박자 춤

北비핵화·유럽 무역협상 등

엄포놓고 후퇴하는 협상전략

美신뢰 깨고 세계질서 해쳐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귀를 기울여보라. 지난 수요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미합중국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들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또다시 뒷걸음질치는 소리였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진 판에 박힌 절차다. 수순은 이렇다: 먼저 상대방을 조롱하고 모욕한다. 일부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지만,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이어 엄청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엄포를 날린 후 뒷걸음질을 치면서 세계를 위기로부터 건져냈노라 의기양양해한다. 하지만 애초에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트럼프의 두 박자 춤이다.

북한과 관련해 트럼프가 취한 행동을 떠올려보라. 그는 김정은을 “자국민의 배를 곯리고 학살하는 미치광이”로 매도하고 전 세계가 이제까지 전혀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날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김정은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하는 것으로 자초한 위기를 해결한 그는 북한 주민들이 절대지존인 독재자 김정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자신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이와 동일한 패턴은 바로 얼마 전 트럼프로부터 “적대국 뺨친다”는 비난을 샀던 EU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회담을 마친 뒤 트럼프는 “미국과 EU는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중국에 대해서도 수위를 크게 낮춘 발언이 나올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박자 댄스는 트럼프에게 전혀 밑질 게 없는 전략이다. 어차피 그의 말은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쓴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라는 책은 ‘진실된 과장(truthful hyperbole)’에 관한 묘사로 시작된다(이는 그가 수시로 내뱉는 뻔한 거짓말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일단 진실된 과장으로 협상을 시작했다가 반박에 부딪히면 이를 현실에 근접한 방향으로 슬며시 수정하는 전략이다.

겉보기에는 황당하고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행동이 실은 약삭빠르고 현명한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일종의 4차원 장기를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지금 지구라는 공간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있다. 어디에도 트럼프가 상대방으로부터 진정한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유럽과의 무역협상에서 보듯 그의 통상적 접근법은 지극히 모호한 내용의 발표문을 내놓거나 2024년까지 방위비 분담금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인상한다는 나토 회원국들의 사전 합의사항을 슬쩍 틀어 마치 자신이 새로 얻어낸 성과물인 양 포장해 승리를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엄포를 놓은 다음 후퇴하는 전략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의 두 박자 춤 때문에 미국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믿고 의지할 수 없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세계질서에 적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평판에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유럽 지도자들은 다투어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조지 오즈번은 자신이 영국 재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미국 대통령은 등을 맡길 만한 든든한 우군”이었지만 영국은 물론 어느 국가도 이제는 더 이상 그 같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EU 이사회 의장인 도날트 투스크도 “저런 친구라면 적과 다를 게 뭐냐”며 “친구란 도움을 요청하는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서 있는 자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전문가인 애덤 포센은 지구촌 국가들이 미국을 우회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부터 EU가 얼마 전 일본과 맺은 쌍무협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제외한 무역협정이 봇물 터지듯 체결되고 있다. 이들 이외의 다른 많은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

포센에 따르면 지구촌 전체가 미국을 비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증거는 해외투자 감소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외투자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 듯 수직낙하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입된 평균 순해외투자는 2012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포센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대미 직접투자를 밀어올릴 만한 숱한 요소들이 있음에도 투자액이 오히려 감소했기에 더욱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를 통과한 재정부양책으로 말미암아 미국 경제의 성장전망을 높여줄 지출 증가, 국내 생산에 탄력을 제공할 세제개편, 기업세 인하 등 세 가지 요인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해외 직접투자가 당연히 늘어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의 부국들 가운데 미국만이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결합된 양호한 성장전망을 보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외투자 감소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트럼프의 무역과 우방국에 대한 공격, 마음 내키는 대로 개별기업을 벌주거나 포상하려 드는 태도, 미더움을 주지 못하는 일반적인 성향 등을 한군데로 모으면 독재자가 통치하는 말썽 많은 국가의 정책 결정을 연상시키는 한편의 그림이 완성된다.

굳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오직 미국의 독재자만이 글로벌 경제 전체를 교란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