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칼럼]서울공화국은 외통수를 부른다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서울공화국이다. 거의 모두라고 할 돈과 입법, 사법, 행정 등의 권력을 서울이 독차지하며, 교육, 문화, 예술 등 각 분야도 마찬가지다. 절반의 인구가 국토의 1할 남짓한 수도권에 모여서 산다. 가히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집중이자 편중(偏重)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머리가 너무 커서 뛰거나 걷기는커녕 목을 가누고 서기도 힘든 기형아의 모습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세계최강국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인구 70만에 불과한 소도시이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에서 세계의 모든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중국의 경우 상해와 광동의 경제력은 북경을 능가하며, 중경이나 서안의 역사와 문화는 결코 북경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에도 교또의 경제력(특히 금융)이나 역사와 문화의 자부심은 도쿄를 능가한다. 도쿄를 비롯한 도쿄도(東京都)의 인구는 일본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다. 하다못해 북한을 보아도 평양인구는 전체 인구의 10% 남짓하다.


우리나라의 수도가 이처럼 기형적 비대성장을 한 원인을 역사에서 찾아보면, 몽골의 압력에 굴복해 이뤄진 개경환도(1270년)를 유래로 들 수 있다. 13세기의 몽골은 동서양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할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갖고서도 40년 전쟁에서 고려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고려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막강한 해군력으로 바다를 장악했기 때문에 육전에서 세계최강인 몽골군도 속수무책이었다. 이 때문에 패전의 책임으로 다급해진 몽골군은 고려에 강화를 통사정하지만, 고려군의 항전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몽골군은 전쟁통에 섬에 갇혀 힘도 못 쓰는 고려의 문신귀족들에게 부귀영화를 내걸고, 강화를 애걸했다.

그랬더니 부귀영화에 마음이 동한 문신귀족들이 몽골군과 내통해 왕을 데리고 강화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개경으로 귀환한 뒤 서둘러 몽골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고려군(삼별초)은 조정에 반기를 들고 몽골군과 끝까지 싸우려했다. 그렇지만 왕명을 따르는 고려군이 몽골군과 섞이는 바람에 삼별초군은 동족을 상대로 한 전투에 의욕을 잃고 말았다.

고려의 문신귀족들이 왕을 꾀어 몽골과 강화를 체결한 이유는 기득권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무인세력이 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특히 군공을 세운 다수 노비의 출현은 그들에게 악몽이었다(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노비해방운동을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는 무신세력에 적의가 많았다). 이 때문에 고려의 귀족들은 서슴없이 백성을 버리고 외세를 택했다. 그 후 외세에 의존한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백성통제에 주력했고, 몽골조정의 지속적인 노비제도폐지권고를 끝내 묵살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통제는 조선이 들어서면서 철폐되지 않고, 오히려 훨씬 강화됐다. 노비의 수를 몇 배로 늘리고, 노비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박탈했다. 더 나아가 백성을 사농공상의 네 계급으로 나누고, 중앙의 통제를 위해 지방의 자율을 전면 부인했다. 이런 무자비한 통제가 수백년을 지속하니 마침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지방은 존재가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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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긴 세월이 흘러 이제 왕조국가는 사라졌다. 그러나 왕조의 유산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아무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라는 말을 정면으로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서울공화국을 그냥 두고 보기에는 폐단이 너무 많다. 특히 안보의 위협은 심각하다. 적에게 항상 외통수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외통수란 장기나 체스에서 다른 군사를 제쳐둔 채 직접 왕을 공격해 단방에 게임을 끝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외통수에 당하면 자기편 군사가 아무리 많고 강해도 소용이 없다.

역사를 보매 조선은 전쟁 때마다 외통수를 당했다. 그리고 외통수에 당한 조선의 왕은 제 목숨을 부지하려고 외세의 꼭두각시를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도 그랬고, 일제침략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외세의 수탈에 맞선 백성들이 왕명을 거역한 역도로 몰려 동족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참극도 빈발했다. 6·25도 마찬가지다. ‘서울만 점령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외통수를 노리지 않았다면,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부 역사가는 “한민족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유난히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 문명을 꽃피우고 서구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나 로마도 반도국가라는 사실을 보면, 우리 민족의 수난이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라는 견해는 맞지 않다. 그 보다는 그리스나 로마가 수많은 도시(지방)국가들의 각축과 경쟁으로 성장하면서 이민족의 침입 시 일치단결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진문명을 건설했다고 보아야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아직도 외통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바로 면전에서 대놓고 ‘서울 불바다’ 운운해도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외통수로 나라의 운명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준엄한 역사의 경고를 까마득히 잊고 지낸다는 점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은 평범한 농부의 지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이 평범한 지혜를 모를까?

지방자치는 나라의 번영뿐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결코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 그렇지만 서울에 비해 너무나 낙후된 지방의 문제는 워낙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졌기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인구가 1,000만에 육박하고, 대한민국의 산업과 무역의 중추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라면 지역의 항만과 공항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중앙정부보다 지역주민의 뜻을 따르는 자세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야말로 외적의 외통수를 피하고, 나라와 백성을 부강하게 만드는 시금석이다.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조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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