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 완화를 촉구함에 따라 이달 중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국회 처리가 유력해졌다. 이에 따라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그간의 제약을 넘어 자본확충을 통한 성장이 기대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요구하는 수준의 파격적인 ‘은행 혁신’을 보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非)금융기업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최대 34%까지 보유(국회 계류된 특례법 기준)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쟁력 확대에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대기업은 여전히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고 향후 다양한 규제에 얽매일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법 제·개정 과정에서 어떤 그림자규제가 더해질지 지켜봐야 한다”며 “또 현재 인터넷은행들이 얼마나 혁신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지 경영평가도 진행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실질적인 은산분리가 아닌 인터넷은행에만 예외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게 될 것으로 보여 대주주 자격 요건이 여전히 까다롭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국회에 계류된 5개 은산분리 완화 방안 중 통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 정재호 의원의 안(案)을 보면 ‘개인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은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SK·네이버처럼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기업들은 애초에 시장에 진출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셈이다. 이중 SK는 2015년 컨소시엄을 통해 은행업 진출을 추진한 적도 있다.
카카오뱅크의 주식을 10% 보유한 카카오는 향후 은행업에서 강제 퇴출당할 수도 있다. 현재 8조5,000억원인 카카오 자산이 앞으로 10조원 이상으로 불어나면 총수가 있는 대기업으로 지정돼 법을 위반하게 되는 탓이다. 금융당국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이 같은 규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여권 내에서 반대 의견이 거세 통과 여부를 자신하기 어렵다.
인터넷은행들이 향후 은행뿐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컨대 한 인터넷은행이 카드사업에 진출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 은행 지분을 갖고 있는 비금융기업은 복합금융그룹으로 지정돼 ‘금융그룹통합감독’을 받아야 할 수 있다. 금융당국에 기업 내부 자금 흐름 등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IT 혁신은 은행뿐 아니라 보험·카드 등 모든 금융산업에 필요한데 옥상옥 규제까지 감수하며 금융업에 진출할 IT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내다봤다.
특히 인터넷은행이 혁신을 통해 다른 은행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규제 완화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개인정보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행법으로는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보유한 다양한 비식별정보를 활용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자유롭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 인터넷은행이 빠르게 약진했다. 통신사 KDDI가 모회사인 일본의 지분은행은 통신사가 가진 정밀한 고객 정보를 신용평가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통신사 고객을 통해 예금을 확보하면서 조달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마케팅 비용을 절감했다. 중국도 텐센트·알리바바 등 거대 ICT 기업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며 금융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텐센트가 설립한 1호 중국 인터넷은행인 위뱅크는 지난해 순익이 전년 대비 261% 증가했는데 텐센트가 보유한 17억여명의 빅데이터를 분석, 구축한 대출시스템이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인터넷은행 스스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중금리보다는 기존 은행의 영업 수준을 답습하는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 행태를 버리고 초창기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상품 및 서비스를 과감하게 꺼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들이 자본을 늘려 시중은행들과 본격적인 금리 대결에 나서고 IT 기업들의 혁신 문화를 흡수해 신선한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