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삼성과 '제2의 반도체'

김영필 경제부 차장

김영필



때로는 층수가 지위를 결정한다. 최고경영자(CEO)는 건물 꼭대기 바로 아래 있고 아파트는 중고층이 로열층이다.

층수는 몸값도 가른다. CEO 연봉은 사원의 30~40배다. 아파트 로열층은 웃돈이 붙는다.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의 로열층은 1.5층이다. 매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인트프랜시스호텔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층수로 기업을 구분한다. 로슈와 화이자·머크와 같은 글로벌 제약기업은 1층과 2층 사이 1.5층에서 프레젠테이션(PPT)을 한다. 메이저 리그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업체는 2층을 배정한다. 나머지는 32층이다. 주로 신흥국 기업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32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다.

JP모건 행사가 떠오른 건 사흘 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 때문이다. 삼성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꼽았다. 반도체가 어떤 사업인가. 지난 1983년 고(故)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결심했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저주에도 삼성은 해냈다. 1993년 메모리 분야 세계 1등이 됐다. 지금은 나라 경제의 대들보다.


바이오 시장은 반도체보다 크다. 글로벌 제약 시장 규모만 1조1,000억달러다. 반도체의 3배가량이다. 구글은 헬스케어 사업에 손대고 있고 IBM은 인공지능(AI) 의사 ‘왓슨(Watson)’을 내놓았다. ‘주요2개국(G2)’을 꿈꾸는 중국의 10대 전략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이오다.

관련기사



그래서 삼성의 ‘바이오 선언’은 뜻깊다. 김 경제부총리가 바이오 규제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반갑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규제를 풀고 또 풀어야 한다. 삼성조차 국제행사에서는 로열층이 아니다.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연구개발(R&D)을 비롯해 세제혜택을 파격적으로 늘려보자.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약가도 검토 대상이다.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한다. 바이오클러스터 역시 지원이 더 있어야겠다.

격려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업어주고 싶다”고 했던 한화큐셀의 새 일자리는 500개였다. 500개는 미국 대통령도 움직인다. 2010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시간주 홀랜드시의 LG화학 배터리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그때 LG가 만든 일자리가 500개다.

바이오는 어떨까. 삼성과 셀트리온은 송도 허허벌판에서 3,500여개의 알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1조원을 들여 아일랜드 공장과 미국 엠팩사를 인수합병(M&A)한 SK는 바이오에서 또 다른 하이닉스가 나오기를 꿈꾸고 있다. LG도, 코오롱도 바이오를 키운다. 그래서다. 바이오 산업의 최전선에서 규제 완화 보따리를 푸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건. 마침 삼성이 AI와 바이오 등에 2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완화는 빠를수록 좋다. 지금 뿌린 씨앗이 두고두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것이다.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