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은 10일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사건과 관련, 일부 수입업체가 총 66억 원 상당의 북한산 석탄·선철을 러시아산으로 위조해 국내에 불법 반입했다고 밝혔다. ‘일부 업체의 일탈’이란 식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이들 업체에 대한 처벌 수순에 들어가면서 우리 기업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북 제재에 가장 앞장 서야 할 한국에서 제재 구멍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소극적 대응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사한 제재 위반 사례가 재발할 경우 미국이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꺼내 들 수 있어 관련법 제정 등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청은 이날 정부대전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관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10개 사건 중 7건에 대해 부정수입·밀수입 등 불법 혐의를 확인하고 관련 수입업자 3명과 관련 법인 3개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스카이엔젤호, 리치글로리호, 진롱호, 샤이닝리치호 등 4척의 선박을 안보리 제재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앞서 일각에서는 북한산 석탄 수입업체와 그 석탄을 사다 쓴 발전업체 등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되면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망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초기 단계부터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력했다는 점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 사례와)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에서도 북한과 비핵화 협상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를 확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정 실장은 검찰 기소를 포함한 한국 법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미가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협의를 진행하면서 미국 독자제재까지는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또 다시 유사한 대북제재 위반 사례가 발생할 경우 미국이 이번 사건까지 다시 끄집어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방미 과정에서 한미가 이 문제를 충분히 상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재 위반 사항이 재발하면 미국이 이번 사건까지 확대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재발 방지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수입업체가 처벌을 받는다 해도 단순히 부정수입에 대한 처벌일 뿐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 위반에 대한 처벌은 아니다”라며 “부정수입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해 관련 법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이와 함께 국정조사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여당과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10개월 이상 이같은 비리를 사실상 방조하고 묵인해 국제 공조와 국가 신뢰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했는지 정부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 밝히는 것은 중대한 외교 현안”이라고 국정조사 실시를 주장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또한 “북한 석탄 문제가 국내 문제뿐 아니라 대북제재와 관련된 외교 문제임을 인식해 정부 발표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국회 차원의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효정·강광우·류호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