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철수칼럼] 선의만으론 세상 바꿀 수 없다

오철수 논설실장



논설실장

“선의로 대하면 北도 달라질 것”


文대통령 유례없는 안보 실험

그러나 北은 핵문제 요지부동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도

되레 소득불평등 심화 부작용

현실에 바탕 둔 정책 펴나가야


“선의의 조치들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9일 인도 방문에 나서면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선의’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선의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 속에는 우리가 선의로 대하면 북한도 착한 마음을 가지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이런 선의는 외교 안보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7월19일에 런던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미 연합훈련의 유예와 관련한 BBC방송의 질문에 대해 “저희가 선의를 보인 만큼 북한도 비핵화에 진전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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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선의가 과연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인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반도 안보지형의 중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4개월이 다 돼 가지만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북한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기껏 한 것이라고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전문가의 검증도 없이 폐쇄하는 쇼를 벌인 것 정도다. 우리는 아직 북한이 어디에 얼마만큼의 핵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북한은 오히려 판문점 선언에서 밝힌 대로 종전 선언을 이행하라고 한국과 미국을 다그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오는 9월 평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 없이 종전 선언만 부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는 칼로 두부 자르듯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서로 간에 신뢰가 부족하다. 남북은 수많은 희생을 초래한 전쟁을 겪었고 이후에도 수십년간 대립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에 진보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풀릴 수는 없다. 미국이 종전 선언과 대북제재 완화 등 북한에 대한 보상책을 최대한 뒤로 미뤄놓는 것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의 평화체제 전환도 남북·북미 간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 문제는 남북 차원을 넘는 국제적인 이슈다.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은 글로벌 슈퍼파워인 미국의 개입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북핵 문제는 우리 힘 만으로 그것도 선의를 베푸는 것으로는 풀기가 어렵다. 북한은 핵이 없어지는 순간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9월로 예정된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우리 정부의 대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정부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종전 선언만 구체화한다면 결국 미국과의 공조만 삐걱거릴 수밖에 없고 이는 정부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선의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사례는 또 있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고 이것이 소비로 이어지게 해 경제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정부가 2년간 최저임금을 무려 29%나 인상하면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업계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임금을 올려줄 형편이 되지 않는 소상공인들은 데리고 있던 직원들을 어쩔 수 없이 내보내고 있다. 5개월째 고용쇼크가 이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의 정책이 되레 취약계층의 일자리만 없애버린 셈이다.

개인적인 관계도 그렇지만 국가의 일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무정부 상태인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문제를 선의로 풀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현실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의 정책을 보노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뜬구름 속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현실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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