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의 나팔수였던 요제프 괴벨스 선전부장의 비서가 102세 되던 해 자신의 생애를 회고했다. 괴벨스의 개인비서이자 속기사였던 브룬힐데 폼젤의 주장은 한결같다. 자신은 잘못한 것도 책임질 것도 없으며 당시 자신은 나치 만행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시 나치가 정권을 잡게 한 독일 민족 전체의 책임이며, 그 시절에 살았다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당당한 변명’이다. 품젤의 회고록이 ‘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녀의 구술을 분석한 정치학자 토레 D.한젠의 글이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덧붙었다.
‘나’를 주어로 구술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책을 통해 독자는 엄격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순종적으로 자라, 정치에는 무관심하지만 개인의 성공 욕망이 우선이었다는 ‘그녀’를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를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섬뜩하다. 그녀는 그렇게 현실을 외면했다.
이에 대해 한젠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가 자행되는 동안에도 정치·사회에 무심한 ‘폼젤들’이 상당수였던 1930년대와 오늘날의 공통점을 되짚는다. 여전히 정치적 무관심은 팽배하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물을 때도 대다수 젊은층은 투표장에 가지도 않은 채 탈퇴 결정에 탄식했을 뿐이다. ‘어느 독일인의 삶’이 ‘어느 한국인의 삶’으로 옮겨가지 말란 법 없다. 촛불혁명을 이뤄냈다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취약하다. 이 책의 출간이유일 것이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