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둔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잇따라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치과의사 출신은 임플란트(인공치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약 개발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오스코텍은 연내 미국에서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SKI-O-703’의 임상 2상을 시작한다는 목표 아래 막바지 준비에 돌입했다. 예정대로 임상이 완료되면 관절 염증을 일으키는 비장티로신키나제(SYK)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첫 신약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오스코텍은 지난 1998년 치과의사 출신 김정근 대표가 설립한 신약 개발 전문기업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2015년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연구개발 자회사 제노스코를 통해 유한양행과 비소세포페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지난 4월 미국암학회에서는 레이저티닙이 시판 중인 어떤 치료제보다 종양을 줄이는 효과가 우수하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뇌종양 치료제 전문기업 이뮤노멧테라퓨틱스의 김성욱 대표도 치과의사 출신이다. 한올바이오파마 대표로 재직하던 김 대표는 회사가 2015년 대웅제약에 인수되자 관련 연구원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가 바이오벤처기업을 차렸다. 이뮤노멧테라퓨틱스는 뇌종양 치료제 ‘IM156’의 임상 1상을 미국과 한국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까지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임상 2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진행한 전임상에서는 뇌종양 뿐만 아니라 림프종과 위암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차세대 항암제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치과의사 출신인 문은상 대표가 2006년 창업한 신라젠은 면역항암제 ‘펙사벡’을 앞세워 글로벌 3상을 진행 중이다. 펙사벡은 천연두 백신으로 쓰이는 우두 바이러스에서 추출한 성분을 기반으로 하는 면역항암제다. 유전자 조작을 거친 우두 바이러스를 인체에 투입해 암세포를 감염시키고 이후 인체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해 암을 치료하는 원리다. 신라제은 임상시험을 차질 없이 진행해 오는 2020년 펙사벡을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그간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치과의사 출신은 주로 임플란트 시장에 뛰어들어 글로벌 수준의 바이오기업으로 키워냈다. 치과용 임플란트 국내 1위인 오스템임플란트에 이어 덴티움과 네오바이오텍이 가세하면서 3파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전공 분야인 치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시장 진입이 수월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치과의사가 일반 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신약 개발은 결국 얼마나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개인병원 운영을 통한 치과의사 특유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돼 신약 개발에 도전장을 내미는 치과의사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