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20일(이하 현지시간) 8년 만에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체제를 공식 졸업했지만 시장에서는 이탈리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새 뇌관으로 부상하며 유럽 위기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의 경제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데다 이미 막대한 공공부채를 안고 있는 이탈리아의 새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포퓰리즘 정책을 모두 반영할 경우 지난 2010년 방만한 재정지출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던 그리스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의 구제금융 졸업으로 유럽 경제가 8년 만에 한숨을 돌렸지만 이탈리아의 공공부채 문제와 반(反)유럽연합(EU)·유로존 성향인 포퓰리즘 정부의 정책에 따라 유로존의 자본유출 악몽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공공부채 규모는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32%로 유로존 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아 정부가 연금개혁안 철폐, 세금 인하 등 포퓰리즘 공약 실현에 나설 경우 그리스식 채무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새 정부는 오는 10월 EU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5월 정권 출범 당시 요동쳤던 국채수익률도 최근 다시 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7일 기준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109%로 연초 대비 2배가량 급등했다. 독일과의 격차도 연고점에 가까워졌다.
이 같은 이탈리아발 위기감은 구제금융에서 겨우 졸업한 그리스의 경제자립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그리스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일간 카티메리니신문과의 회견에서 “이탈리아나 터키 등 주변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가 격랑에 빠질 경우 그리스는 채권시장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스는 지난 8년간 받아온 총 2,89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20일 공식 종료했지만 채권단과의 협약에 따라 2060년까지 단계적으로 GDP의 2.2%인 재정흑자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공공부채가 GDP의 180% 규모에 달해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유로존 위기가 이탈리아의 잠재적 위기 등과 맞물려 한동안 더 깊어질 수 있다고 관측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존 내 경제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에서 재정자금을 서로 융통하는 ‘유로존 공통예산’을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가 “자국의 세금을 다른 나라를 위해 쓸 수 없다”고 반발해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각국에서 반EU·유로존 성향이 강화되는 점도 유로존 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탈리아 집권당은 유로존 탈퇴를 옹호하며 일각에서는 이탈리아 리라화 체제로 돌아가지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이컵 커키가드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럽 경제와 더욱 깊숙이 통합된 이탈리아는 그리스 사례와 비교하면 잃을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