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메스를 잡다]빅토리아 여왕의 산통, 마취수술의 시작이었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복강경 수술 전문의 눈으로 본

루이 14세의 공개 치루시술 등

역사속 인물 28인의 사례 통해

'수술의 역사' 흥미롭게 풀어내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태양왕’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는 온 국민이 알도록 떠들썩하게 치루 수술을 받았다. 1686년 초 갑자기 생긴 치루로 고통받던 루이 14세는 그해 말 베르사유 궁전에서 아내와 아들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리의 손을 붙잡은 채 수술을 받은 것. 개인용 좌식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며 찾아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참모 조언을 듣기도 했던 루이 14세는 공개적인 항문 수술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는 75명의 일반 환자를 대상으로 연습한 후에야 왕의 수술에 임했다. 성공적으로 끝난 이 수술은 ‘위대한 수술’로 불렸는데, 수술에 임한 왕의 용감함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바지 위에다 붕대를 맨 차림을 따라 하는 일이 궁전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복강경 수술 전문의인 아르놀트 판 더 라르가 쓴 ‘메스를 잡다’에는 결석제거술, 마취, 치루, 위 절제수술 등 역사적 인물들이 겪은 질병·수술에 대한 이야기 28개가 담겼다. 루이 14세의 사례 외에도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뇌 일부가 사라진 상태로 수술실에 도착한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의사들의 긴박했던 수술 현장, 포피에 생긴 문제 때문에 7년 넘게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지 못한 루이 16세, 출산의 고통을 참지 못해 수술에 마취가 도입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낸 빅토리아 여왕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다양한 역사 자료와 인터뷰, 전기, 인물에 관한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들은 현역 외과의인 저자의 전문지식과 경험, 유머가 더해져 한층 흥미를 더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슬로테르바르트 종합병원의 집도의인 저자는 외과 의사들의 분투를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몇몇 수술 장면은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추리소설을 연상시킬 만큼 박진감 넘치는 부분도 있다. 의학에 대한 책은 어렵고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일랑 모두 잊어도 좋다. 500쪽 가까이 되는 책장은 대중소설 못지 않게 빠르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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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또한 우리 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외과 의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우리 몸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도 마련해 준다. 단순히 유명인들의 흥미로운 일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겪는 인간의 모습과 그 고통을 방관하지 않는 의사들의 모습까지 녹아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실제로 책의 많은 부분에서는 외과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한편 잘못된 지식과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오히려 환자들에게 해를 끼쳤던 의사들에 대한 자조 섞인 평가도 담겼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돈벌이를 위해 사람의 몸을 치료하려다 생긴 불상사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부분 등이 그렇다.

에필로그에서는 고전 SF 작품에 등장한 미래 외과 의사를 소개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로봇 의사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기계로 된 팔을 끼워주는 내용이나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의사 닥터 애쉬 등이 언급된다. 하지만 저자는 외과 의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로봇 혹은 컴퓨터 기술로 대체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메스를 쥐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암을 제거하고, 고통을 줄여줄 사람은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1만 9,8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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