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말 2014브라질월드컵 예선 도중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 최강희 감독은 예선만 맡겠다고 하고 지휘봉을 놓았다. 부랴부랴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홍명보 감독이 선임됐지만 브라질월드컵은 최악의 결과를 남겼다. 사령탑을 넘겨받은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2년9개월을 버티다 2018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경질됐다. 이에 신태용 감독이 긴급 투입돼 본선을 치렀다. 2010년 이후만 봐도 축구대표팀 감독들은 살얼음판 위에서 월드컵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달 선임된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은 모처럼 호재를 안고 닻을 올리게 됐다. 2018러시아월드컵의 16강 진출 좌절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한국 축구는 최근 끝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격파하고 사상 첫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2연패를 이뤄냈다.
2022카타르월드컵 출발선에 선 ‘벤투호’ 1기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8명을 맞이하고 국내 팬들 앞에서 첫 평가전을 치른다. 지난달 20일 입국한 벤투 감독은 3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태극전사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담금질에 들어갔다. 대표팀은 오는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코스타리카,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 차례로 맞붙는다.
벤투 감독은 이날 첫 훈련에 앞서 아시안게임 멤버들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내년 1월 2019아시안컵 때에 맞춰 대표팀을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을 자신감 있게 밝혔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뒤 처음 접한 경기가 아시안게임 경기였는데 기존 성인대표팀 멤버를 중심으로 보며 (23세 이하 팀의) 황인범·김문환이 눈에 들어 발탁하게 됐다”면서 “아시안게임 멤버들이 우승하고 온 것을 축하하고 이승우 같은 젊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팀의 러시아월드컵 결과를 벤투 감독은 절망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우리 대표팀에게 러시아월드컵이 실패한 대회는 아니었다. 마지막 경기를 이겼고 1·2차전도 한 골 차로 졌다”며 “기대치가 높아진 것은 우리에게 동기부여의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달 평가전은 아시안컵을 향한 조율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두 경기가 전부가 아니며 아시안컵 결과물을 위한 과정으로 보면 된다. 당장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후에는 월드컵 예선을 무난히 통과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내 철학 등을 이식하면서 기존 대표팀의 틀을 유지하는 쪽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출항을 앞두고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벤투 감독이 꺼내 들 공격 카드다. 벤투호 1기에는 손흥민을 비롯해 문선민·이승우·황희찬·황의조· 지동원 등 공격수들이 포진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손흥민은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공격수다. 손흥민을 활용해 득점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격 조합과 전술을 찾는 게 벤투 감독의 과제로 보인다. 급부상한 선수는 황의조다. 사실상 대표팀의 공격자원에서 밀려나 러시아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가 11개월여 만에 A대표팀에 복귀하게 된 황의조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화려하게 비상했다. 손흥민과 콤비를 이루며 무려 9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오른 황의조는 ‘인맥 축구’ 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적은 출전시간에도 4골을 몰아넣은 이승우와 일본전 쐐기골을 터뜨린 황희찬도 성인대표팀에서 공격수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 그동안 불안함을 노출해온 수비진의 주전 멤버를 확정하는 것 역시 벤투 감독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한편 3일 금의환향한 손흥민 등 8명은 4일 대표팀에 합류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손흥민은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해단식에서 “축구를 하면서 처음인 우승을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할 수 있게 돼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히고 “금메달은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