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우거진 강가에 한 소년이 물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 잘하네”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성악가의 꿈을 꾼 후다. 갈 곳이라고는 집과 학교밖에 없었던 이 소년은 심심할 때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답답할 때는 어김없이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하지만 성악가의 꿈도 잠시. 어려운 집안 사정에 형제들이 ‘돈 안 드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7남매 중 막내였던 이 소년 역시 학비가 지원되는 대학교를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곳이 ‘농협’이다. 농협대학교 졸업 직후 농협은행에 입사했고 20여년 이상 한길을 걸어 부행장을 거쳐 지금은 금융투자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로 주목받는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에 올랐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올 1월 취임한 박규희 대표. 최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오랜 사회생활을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다음 자리가 보이고 맡은 일에 열정을 더하다 보니 항상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왔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부행장 시절에도 떠날 때 후배들이 보는 선배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직무를 수행했다”며 “NH-아문디자산운용이 농협 생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다. 나중에 여기서 떠날 때도 직원들에게 ‘더 좋은 회사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소개했다.
가는 자리마다 세 가지는 바꾸자
불합리한 제도 개선해야 직성 풀려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등 거치면서
여신심사제도 개선...건전성 높여
박 대표의 이 같은 노력은 지난 8개월간의 성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 28조원 남짓했던 수탁액은 연초 대비 5조원(주식 1조원, 해외투자 1조원, 채권 2조7,000억원, 대체투자 7,000억원) 이상 늘어나며 업계 평균 성장치의 두 배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도 공격적으로 뛰어들어 이미 3,000억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디스럽티브’ ‘KRX300 스마트 인베스터’ ‘QV 글로벌 포트폴리오’ 등 9개의 신규 신상품은 물론 농촌발전 기여 목적의 ‘농촌사랑고배당펀드’ 상품도 리모델링해 출시했다. 이외에도 조직개편을 통해 금융지주 중심으로 WM 비즈니스, 해외 대체투자를 강화하는 등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내가 가는 자리마다 기존보다 최소 세 가지는 새롭게 변화시켜놓고 나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어도 항상 바쁠 수밖에 없었던 이유죠.”
박 대표에게 안주란 없었다. 어떤 보직을 맡든 회사에 도움되지 않는 제도는 개선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를 위해 하루 14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공부하며 외부 전문가에게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는 “촌에서 올라와 처음 투자은행(IB) 업무를 맡았을 때는 6개월 이상 책을 들고 출퇴근하며 직원들과 외부 전문가들에게 정보를 얻었다”면서 “하지에 병이 생길 정도로 공부하느라 고생했지만 그렇게 한 번 눈이 트이니 내부 장악도 자동으로 되고 성과도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특히 기업투자금융부문장과 여신심사본부장을 지내면서 각종 사내 제도를 개선해 지금의 농협은행이 건전하게 탄생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신담당자 우대정책 도입과 여신심사제도 개선이다. 그는 “여신담당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임에도 우대해주지 않으니 ‘가면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고착돼 우수한 인재들이 지원하지 않았다”면서 “우대정책을 도입했더니 능력 있는 젊은 직원들이 지원하고 업무 효율성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여신심사제도 개선은 회사 건전성에 큰 도움이 됐다. 기업금융에서 우량 여신 확대와 대손충당금(대출금 따위에서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 장부상으로 처리하는 추산액) 축소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박 대표는 여신심사를 담당하는 본부 직원에게만 묻던 부실대출 책임을 가장 아래 단계에서 직접 기업을 대하는 사무소장에게 묻도록 했다. 그래야 회사가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은행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박 대표는 “우량 여신을 늘리고 충당금을 줄여야 은행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며 “이전에는 거액의 여신을 하게 되면 일선 영업점에는 책임이 없고 본부의 심사 담당자에게만 책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영업점 입장에서는 부실한 기업이라도 우선 대출을 하면 성과가 나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심사를 시켰고 본부에서는 부적절한 기업에 대출이 안 되는 논리를 찾아 부결을 내기에 바빴다”고 했다. 이어 “1년 이내에 부실기업이 많이 나는 사무소는 상당한 페널티를 주기로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서로 핑계를 대는 쌍방 간 문제를 해결하니 부실여신이 확 줄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직원평가제도를 비롯해 근무환경 등 모두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를 일궈냈다고 덧붙였다.
조직개편 ‘난제’ 해결사로
부문별 CIO 선임해 책임운용 강화
“2020년 톱5 운용사” 비전 제시
ETF 라인업 확대...3,000억 돌파
박 대표는 NH-아문디자산운용을 맡은 후 가장 어려웠던 업무로 조직개편을 꼽았다. 지주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우려들이 그의 고민의 무게를 더했다. 끝내 몇 달에 걸쳐 내부 직원들과 지주의 합의를 이끌어냈고 마침내 지난 6월 조직개편 단행에 성공했다. 우선 운용 규모가 30조원이 넘어가면서 기존의 총괄운용책임자(CIO) 대신 조직 운용의 효율성과 부문별 책임 운용을 강화하기 위해 부문별 최고책임운용자(CIO)를 선임했다. 또 회사의 정체성과 경영철학을 아우르는 슬로건(고객의 신뢰는 우리의 자부심)을 공표하면서 전문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4개 부문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운용성과 창출을 통해 오는 2020년 톱5 운용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 회사가 확장성을 넓힐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였다”면서 “주식이나 채권 부문은 잘 정착돼 있었지만 성장세인 해외투자나 대체투자가 타 사에 비해 많이 미흡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업무파악 후 1월 하순에는 직원에게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개편을 통해 한 부문에 모였던 조직을 전문성 위주로 주식·채권·대체·해외로 나눠 책임운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 직원들이 너무 열심히 해주고 있다”며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네트워크와 직원들의 노력이 결합돼 수탁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자부했다.
박 대표는 자신을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비유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업무 지시를 할 때 종국에는 어떤 모습이 돼야 한다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넣는 업무 방식 때문이다. 그림이 완성됐을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로 인한 수혜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그는 “그 과정 중간중간에 계속 확인을 해 미흡할 때는 보완하도록 하고 처음 기대했던 수준까지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그러다 보니 어쩔 때는 직원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모습으로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유하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평을 받는 박 대표가 업무에 있어서는 저돌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런 추진력 때문이다. 그는 “머리에 그려놓은 그림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설득해 이루려고 한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운용하고 수익을 내는 것은 운용 전문가들이 할 일”이라며 “그 사람들이 소신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조직을 셋팅하는 게 나의 일”이라고 했다. 또 “내가 가진 역량 중에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정보를 압축해 엑기스로 만드는 것”이라며 “아직 기대한 만큼의 큰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처음 그린 그림대로 잘 성장하고 있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회사가 더 성장했을 때 과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잘 준비해 정돈된 그림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박규희 대표는 △1959년 안동 △1980년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1995년 안동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2010년 농협중앙회 투자금융부 부장 △2013년 농협은행 기업고객부 부장 △2014년 농협은행 경북영업본부 본부장(부행장보) △2016년 농협은행 여신심사본부장(부행장) △2017년 농협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부행장) △2018년~NH-아문디 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