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요?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미달이라고요?”
올해 서울대 자연대·공대 대학원 정원 미달 사태를 전해 들은 학계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여파가 한국 산업·과학 기술을 선도하는 서울대까지 미친 것은 국가 미래 산업에 분명한 ‘위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산업 구조조정과 더불어 이공계 인력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단독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18학년 전·후기 서울대 공대·자연대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사통합과정 입학 경쟁률은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공대 경쟁률은 지난 2014학년도에 1.16대1로 간신히 미달 사태를 면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0.88대1을 기록해 2년 연속 정원 수를 채우지 못했다. 2014학년 1.27대1이던 자연대 경쟁률은 5년 동안 계속 추락해 올해는 0.95대1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박사과정 경쟁률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박사과정은 연구자를 본격적으로 키워내는 산실로 미래 신산업·과학 기술 발굴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공대의 경우 2014학년 1.01대1로 간신히 모집정원을 채웠으나 이듬해에는 0.73대1로 추락한 후 올해까지 4년 내내 정원 미달에 시달렸다.
기초과학을 책임지는 자연대는 공대보다 인재 부족에 더욱 허덕이고 있다. 2014학년 0.87대1이던 자연대 경쟁률은 5년간 미달이다가 2018학년에 들어서는 급기야 0.58대1로 모집정원의 절반만 겨우 채웠다. 대학원 입학정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대·자연대의 석·박사통합과정 역시 2014학년 이후 하향 추세를 그리다 올해 급기야 초유의 동시 미달 사태까지 맞았다.
학계에서는 국내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의 위기에 따른 미래 비전 부재와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 지원 부족을 미달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자동차와 조선업황 부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 산업계의 미래 성장동력의 상실이 인재 공급을 위한 밸류체인을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은 “현 산업 구조를 지켜본 학생들은 전통적인 중화학 산업의 10년 후 가치를 부정적으로 본다”며 “결국 학생들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변리사 자격증을 따거나 기술 기반 외국계 컨설팅 회사가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부실한 산업정책 로드맵도 비판대에 올랐다. 차 학장은 “이공계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탈원전을 얘기하고 조선업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어떤 학생이 찾아오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의 부족한 예산 지원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차 학장은 “교육부가 2010년부터 벌인 세계 수준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WCU) 사업 중 하나로 공대에 개설한 석·박사통합과정 지원 예산이 3년 전 돌연 끊겼다”며 “당장 연구비도 없는데 누가 지원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WCU 사업의 하나로 개설된 기계항공공학부 멀티스케일기계설계전공 등 3곳의 2018학년 석·박사통합과정 후기 경쟁률은 평균 0.2대1로 지원자가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공대는 산업계의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정부 지원 예산으로 연구비를 충당해야 하는 자연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당장 연구비가 부족해 실험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학장은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기초연구비로 1조5,000억원을 약속했지만 국회를 거치며 오히려 삭감돼 연구비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안으로는 과기정통부에서 구상 중인 ‘연구자 중심 연구개발(R&D)’ 정책의 시급한 도입이 손꼽혔다. 이 학장은 “연구자 중심 R&D가 애초 취지대로만 시행되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자 중심 R&D는 기존 관리·효율을 강조하는 지표 중심 R&D 정책에서 벗어나 연구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고위험 혁신연구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박 의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점을 둬야 할 부분은 우수한 이공계 인재의 체계적 양성”이라며 “정부가 ‘대학 기초연구 강화와 청년 과학기술인 육성’을 국정과제로 삼은 만큼 연구자 중심 R&D 정책을 비롯한 연구 자율성 강화와 연구환경 개선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