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육성으로 말하는 모습이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국제사회가 보는 앞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첫 ‘비핵화 육성’을 내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북특사단에게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며 비핵화 의향을 밝혔다. 이후 그는 여러 통로를 통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인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완전한 비핵화’가 명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된 적은 없었다. 그의 의지는 제3자를 통해 ‘한 단계 건너’ 전해지거나 문서에 명시되는 등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말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하며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고 일관하며 확고하다”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을 북한 매체가 보도한 적이 있지만 육성이 공개된 것은 최초다.
신년사나 중요 행사 연설 등을 통해 드물게 공개되는 최고지도자의 ‘육성’은 북한에서 무엇보다 확고한 권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육성 발언은 그의 비핵화 의지를 뒷받침할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됐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확약’이라는 등의 표현을 쓴 것에 주목하며 “김 위원장이 핵 문제 언급을 직접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날 김 위원장이 언급한 비핵화는 크게 구체화된 내용이 아니다. 표현 자체도 북한 매체들이 지난 6일 보도했던 남측 특사단 면담시 발언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 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남북 정상의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는 전문가 참관 하에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히 폐기하고,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을 시 영변 핵시설도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북한의 추가 비핵화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들어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이 내용을 언급한 것은 김 위원장이 아닌 문 대통령이다.
따라서 북미간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비핵화 ‘행동’을 약속하는 것에 부담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에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지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 폐기에 상응해 미국으로부터의 ‘핵위협’ 뿐만 아니라, 즉 자신들의 핵보유 이유도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선(先) 종전선언 주장도 이런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핵억제력 보유는 “미국이 조선반도에 핵무기를 끌어들이고 우리에게 핵전쟁 위협을 가해온 데 대처한 불가피한 자위적 선택”이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이러한 근원들이 제거된다면 구태여 우리가 막대한 비용을 들이면서 핵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문은 “종전선언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근원을 들어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