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아들은 사람도 아니었다.
사람에게 쓸 수 없는 칼은 그의 자존심을 베었다.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매질하고, 어미를 겁탈했다. 소 돼지로 살기 싫었던 그는 조선바닥에 살기 위해 순응하거나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구동매는 천민조차 같은 천민을 멸시하는 조국을 떠났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야 자신의 칼이 쓰일 곳을 찾았다. 그리고 베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가차없이 갈랐다. 백정의 칼끝이 사람을 향하니 모두가 벌벌 떨었다. 무신회 수장은 그에게 ‘이시다 쇼’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이렇게 불렀다. “내 아들아.”
모든 것을 벨 수 있게 된 그는 눈을 조선으로 돌렸다. 그리고 피의 복수. 모든 일을 마치고서야 그는 자신이 이곳에 돌아온 이유를 찾아냈다. 유일하게 자신을 바라봐준 사람. 애기씨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경멸도 멸시도 두려움조차 없었던 고애신(김태리)를 이 미친 세상에서 지켜내고자 했다.
그리워하던 그녀를 만나 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세상이 변했다”고 “내 눈치 보지 않는 어르신이 없다”고. 그녀는 예전과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눈에 자네는 백정이 아니라 백성”이라고. “그리 본 것은 백정이 아니라 변절자이기 때문”이라고.
결국 그는 어느 비가 오는 날, 고애신의 치맛자락 끄트머리를 붙잡고 “이게 무슨 짓이냐”는 그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읊조린다. “아무것도요. 그저 있습니다 애기씨. 제가 조선에 왜 돌아왔는지 아십니까. 겨우 한번, 그 한순간 때문에 백번을 돌아서도 이 길 하나 뿐입니다 애기씨.”
단 한칼에도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법이다. 고애신의 의병 활동을 알게 된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붙들려 한다. 나서지 말라고. 말로, 총으로, 그리고 칼로. 왜 자꾸 그런 선택을 하냐고. 정혼을 깨고, 흠이 잡히고, 총을 들어 표적이 되는 위험한 선택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날아오르지도, 세상에 어떤 질문도 하지 말라 윽박지른다.
차마 진심에 진심을 더하지 못했던 그의 고백은 고애신 부모의 위패 앞에서야 터져나온다. 호강에 겨운 양반계집, 고르고 골라 제이 날카로운 말로 애기씨를 베었다고. 아프셨을까요. 여직 아프시길 바라다가도 아주 잊으셨길 바라다가도…안되겠지요. 제가 다 숨겨주고 모른척해도 안되는 거겠지요 이놈은.
유진 초이와 함께 일본에 갔다는 그녀의 소식에 구동매는 위험을 직감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는 홀로 다시 현해탄을 건넜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걸 그는 안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과 그녀의 목숨을 맞바꿔야 할 시기가 왔음을. 그렇게 그는 결국 자신의 편을 하나씩 베어간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자신의 남은 생도 조금씩 줄어든다.
불보듯 뻔한 비극적인 미래 앞에서 그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힘으로 아편굴을 떠나 애신을 찾아 나선다. 뒤에서 말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그녀가 건넨 동전 앞 닢만을 매만지던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운명과 이제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글로리 호텔의 폭발. 그는 무엇을 본것인가. sad ending. 유독 그에게만 더 야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