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물가 끌어내리고 공공료 묶고…극약처방 터키

지난달 물가상승률 25% 찍어

기업들에 가격 10% 인하 요청

연말까지 전기·가스요금은 동결

전문가들 "이번 정책, 멍청한 짓

리라화 가치 올려야 물가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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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터키 리라화 가치가 40% 가까이 폭락하며 물가가 빠르게 치솟자 터키 정부가 기업들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극단적인 물가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은 이날 기업들에 연말까지 제품 가격 10% 할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동월 비 24.52%나 오르는 등 물가가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만큼 기업들이 물가 억제를 위해 전면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가격 인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안”이라면서도 “제품가격 인하에 동참한 업체의 창문에 로고 등을 붙여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하겠다”며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가격 인하를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기업들의 사재기 행위에도 경고를 날렸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터키 정부는 기업과 상점의 투기, 사재기 행위를 모니터링할 예정이며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오를 때 시민들이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은 동결될 것이며 국영기업이 운영하는 차, 고기, 유가공 제품, 쌀 등의 가격은 동결되거나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AP연합뉴스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AP연합뉴스


터키 정부가 기업들의 물품 가격 통제라는 초강수를 꺼낸 것은 리라화 폭락으로 지난 6월부터 물가상승률이 넉 달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가계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37.8% 폭락한 가운데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현행 물가지수 산출방식이 도입된 2003년 10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구와 가정용 집기류, 교통비가 1년간 각각 37.28%, 36.61%씩 치솟았고 식품비도 27.7%나 올랐다. 급기야 기준금리 인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달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7.75%에서 24%로 인상했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은 “통화·재정·금융 부문 등 포괄적인 정책 패키지가 요구된다”며 내년도 터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0%에서 0.4%로 대폭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터키 정부의 물가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일제히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운용사 GAM의 폴 맥나마라 펀드매니저는 “이번 정책은 완전히 멍청한 짓”이라며 “시장에 엄청나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볼 때 기업을 강제해 물가 문제를 해결하려던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며 “물가를 잡는 유일한 방법은 리라화 가치가 다시 오르거나 경기후퇴를 감내하며 임금과 수요 측면을 모두 떨어뜨리는 방법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이 금리 인상에 극도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독특한 경제관을 가진 에르도안 대통령과 보조를 맞춘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네덜란드 은행인 ABN암로의 노라 누테붐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대책은 알바이라크 장관이 고금리에 반대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기조를 더욱 따르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며 “매우 절망적”이라고 강조했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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