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박씨는 최근 난임 전문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병원이었다. 반차·연차휴가를 써가며 호르몬 검사, 나팔관 조영술 등을 꾸준히 받았다. 그런데 시험관아기 시술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출산휴가를 앞둔 선배가 배를 쓰다듬으면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데 제가 휴가를 자주 쓴다고 못마땅해하더라고요. 회사에 아직 난임을 알리지 않았는데 아예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돼요.”
국내의 20만명 넘는 난임 부부는 희망고문을 겪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언젠가 임신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육체적·경제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갈수록 늦어지는 결혼과 스트레스,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난임 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맞벌이도, 외벌이도 모두 부담=난임 검사 및 치료의 상당 부분은 여성의 몫이다. 호르몬 검사, 자궁 난관 조영술, 배란 검사, 자궁내막조직 검사, 자궁경 검사, 진단복강경 검사 등 각종 검사와 주사 투여는 여성에게 해당하는 진료다.
난임으로 고민하는 보육교사 오씨는 최근 시험관아기 시술을 알아보다가 생각보다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과배란 주사를 맞은 뒤 난포(난자를 둘러싼 주머니)의 크기를 확인하고 난자를 채취하는 등 시술을 위해 산부인과를 3~4번 방문해야 한다. 맞고 나면 근육이 뭉쳐 엉덩이가 돌처럼 단단해지는 일명 ‘돌주사(착상주사)’를 맞는 날이면 종일 엉덩이를 마사지해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일하는 여성들이 난임 시술을 받기 위해 퇴사를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씨는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의 특성상 잠깐 산부인과에 갔다 오는 건 꿈도 못 꾼다”며 “임신하려면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난임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도 난임 환자에게 큰 부담 중 하나다. 지난해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 본인부담금을 낮췄지만 진찰·검사·마취·약제 등을 합한 진료비용은 여전히 많다. 나이가 많을수록, 난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 대신 글로벌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아 가격 부담은 더 커진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수년간 난임 시술에만 7,000만원을 쓴 부부도 봤다”면서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대출을 받는 사례들을 접하면서 난임 여성에게 힘들어도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난임 부부, 사회적 편견에 피멍=40대 후반인 이씨는 난임 전문병원들 사이에서 ‘JS(진상) 환자’로 불렸다. 의사들은 시술을 더 해도 임신할 가능성이 낮다며 시술을 만류했다. 이씨는 “지금도 매달 생리를 하는데, 폐경이 아닌데 어떻게 임신을 포기하느냐”며 의사에게 맞섰다.
환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체외수정·체내수정 등 시술에 적극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난임 시술을 받은 환자의 연령대는 35~39세(18.0%)가 가장 많다. 이어 40세 이상(16.6%), 30~34세(16.3%), 25~29세(12.3%), 24세 이하(5.9%) 순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 난임으로 고민하는 부부를 향한 사회적 편견도 크다. 식습관, 가족력, 과거 병력 등 다양한 이유로 임신이 잘 안 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부족하다.
20대 후반인 정씨는 “난임이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결혼 전에 문란하게 생활한 것 아니냐’는 말을 쉽게 들었다”며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돼 난임 병원에 다니는 것을 주변에 숨기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임신 간절함 악용한 사기도=난임 부부의 간절한 마음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초반의 이씨는 임신·출산 관련 고민을 잘 해결해주기로 유명한 무당을 찾았다가 1억원을 날렸다. 무당은 굿만 하면 바로 아이가 들어선다며 이씨를 설득했다. 굿을 한 후에도 기다리던 아이 소식은 없고 남편에게 들키면서 오히려 이혼 위기에 몰렸다.
결혼하면 당연히 애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난임은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난임 부부들은 주변에서 ‘밥값 못한다’ ‘새 장가 들여야겠다’ ‘아기만 낳으면 다리 쭉 펴고 잘 것 같다’ ‘마음을 비워라, 포기하면 생긴다’는 말 등에 상처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회장은 “난임 치료는 생리 주기와 생리 양을 줄여 폐경을 앞당기게 하는 등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과정”이라며 “여기에 사회적 편견까지 심하다 보니 많은 난임 부부들이 ‘딩크족(자녀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임을 내세워 난임을 숨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