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교 무상교육 조기 시행 - 반대

공론화 과정 빠진 설익은 정책추진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내년 2학기부터 조기 시행한다는 정부 방침을 놓고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일 간담회에서 기존 오는 2020년으로 예정돼 있던 고교 무상교육을 내년 2학기로 앞당겨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교육계에서는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할 경우 연 2조원, 단계적으로 실시하면 첫해 6,00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상교육 조기 시행 찬성 측은 교육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서민들 가계의 교육비 부담 절감을 위해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설익은 정책으로 향후 행정력만 낭비할 우려가 크고 교육계의 지출 구조조정 노력 없이 무상교육을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율만 높이려는 시도는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우리나라에서 고교 무상교육 정책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공론장에 등장했고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중도좌파 정당 후보들에 의해 다시 공약으로 채택됐다. 집권 후 문재인 행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20년부터 단계적 실시라는 단서를 달고 고교 무상교육을 추진한다고 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임명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당초 2020년 시행이 예정돼 있던 고교 무상교육을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교육부 등 행정조직의 역할분담과 정책시행 로드맵이 준비되고 재정당국과의 조정을 통해 재원에 대한 계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대통령이 시정연설 등을 통해 공론화하고, 국민들도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전반적인 사회여론이 어느 정도 성립될 것이다. 행정부와 여당이 당정협의회를 통해 법률·예산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이와 같은 공론장의 활발한 논의를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형태의 정책이 최종적으로 채택됐을 것이다.


신임 교육부 장관의 고교 무상교육 추진 발언과 여당의 법안 제출은 이 모든 과정을 통째로 생략한 것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정상적이고 문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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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교육 분야의 정책 우선순위와 재정배분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정상적인 정책검토 절차를 생략하고 발표해버린 점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대선 공약이니 이런 절차 정도는 생략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으나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통 선거 공약은 인수위원회에서 국정과제로 선정되고 이를 구체화해 행정부가 실행안으로써 정책을 설계한다. 국정과제 간 우선순위가 설정되고 현실적인 소요재원과 재원대책이 확정된다. 이는 정치인들의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가 행정부 관료조직의 전문성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 조건에 맞는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고교 무상교육 실행을 위해 교육부가 발주한 정책연구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너지 효과는 전혀 얻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정책 집행의 주체인 교육부는 서둘러 구체화된 정책 로드맵을 설계해야 하고 시도교육청과 논의하는 한편 재정 확보를 위해 국회 및 기획재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교육부 장관이 시한을 명시함으로써 제대로 된 토론은커녕 이를 뒷수습하는 데 행정력이 낭비되는 상황이 됐다.

둘째, 정상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거쳤다면 당연히 제기됐을 질문들이 생략돼 보다 타당한 정책 우선순위에 따른 교육정책이 설계되지 못한 면이 있다. 사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교육정책의 재원이라고 할 때 국가 재정은 유아교육 투자가 우선이 되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한정된 교육재원을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공동체교육에 해당하는 유아교육이 직업전문교육으로 전환되는 고교교육에 비해 공공성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최근 사태에서 보이듯 낮은 공립유치원 비율을 고려할 때 우선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정상적인 절차를 따랐을 때는 고교 무상교육이 공약이지만 국민들과 사회적 요구를 검토할 때 보다 타당한 교육재원 배분을 위해 도입시기를 조정한다든지 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신임 장관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인상을 가정하고 고교 무상교육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적절하지 않다. 교육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방교육재정교부율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교육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저성장·저출산·고령화라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를 고려할 때 세입의 일정 비율을 자동으로 배분하는 교부율의 상향 조정 추진은 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복지지출 급증에 따라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기술투자를 위한 재원이 급감하고 있고 학령인구가 급속히 주는 상황에서 교육계의 자체적인 지출 구조조정의 노력 없이 국가 재정의 추가 배분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소비자로 가정하고 중요한 교육정책의 내용을 월 13만원의 가처분소득으로 환원시켜 소비자로서 상정된 시민과 직접 거래하고자 하는 포퓰리즘 태도가 나타나는 것은 유감이다. 국민들은 이익보다 원칙을, 사익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을 정책 책임자들이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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