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나팔꽃

- 이용헌

2415A38 시



나팔꽃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거기,

아무도 몰래 지어놓은

지하방송국이 있다.

세상 밖 전하고픈 깜깜한 소리들을

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하는

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


저 지하방송을 즐겨듣는 사람들은 울타리마다 알록달록 스피커를 올린다. 빨랫줄을 가야금 줄처럼 2층까지 길게 매어도, 레, 미, 파, 솔~ 소리 계단을 만들기도 한다. 이슬 맺힌 얇은 스피커에서 ‘아침의 영광’이라는 시그널 뮤직이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수백 개의 스피커라도 향기로 바뀐 음악은 청각을 상하게 하지 않고 마음 고요하게 해준다. 굳이 소리를 캐러 꽃잎 갱도에 들어간 꿀벌 광부들은 아침 꿀 한 잔에 취한 채 하루라도 천 년 같은 시간을 얻어오곤 한다. <시인 반칠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