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이 30일 선고된다. 피해자들이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만에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내려지는 셈이다. 만약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비롯한 강경 대응을 검토할 것으로 보여 한·일 외교관계에 긴장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대법정에서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앞서 1941∼1943년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여씨와 신천수(사망)씨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 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그대로 확정했다. 이에 여씨 등 4명이 우리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1·2심은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는 이춘식(94) 씨와 김규수(사망) 씨에 대해서도 “구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구 일본제철은 신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채무를 승계했다고도 볼 수 없다”며 같은 결론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판결을 뒤집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이듬해 7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할 것으 판결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었다. 피해자들이 2005년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낸 후 8년 만에 거둔 성과이기도 했다. 이 같은 서울고법의 판결에 신일본제철 측이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왔지만 대법원은 5년이 넘도록 시간을 끌었고, 이춘식 씨를 제외한 피해자 3명이 결론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 소지가 있는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고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정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7월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심리에 속도를 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변희재 씨의 상고심 판결 등 3건도 선고할 예정이다. 변씨의 재판은 ‘종북’과 ‘주사파’라는 표현이 명예를 훼손하는 위법행위인지가 쟁점이다. 당초 함께 선고될 예정이었던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 등으로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고심 판결은 판결서 작성 지연 등을 이유로 내달 1일로 선고가 연기됐다.
/권혁준인턴기자 hj779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