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간 에티오피아는 끝없는 빈곤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시달려왔다. 1973~74년 가뭄과 그로 인한 기근으로 약 3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중반에는 훨씬 극심한 기근이 닥쳐 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 번째 시기인 1990~2000년대에도 수 만 명 이상이 기아에 허덕였다.
그러나 그 후 에티오피아 경제는 눈에 띄게 발전했다. 경제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포괄적 사회안전망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50년 무렵엔 극도의 빈곤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재단은 전망하고 있다.
약 30년 전 종족 간 학살로 크게 분열된 르완다는 이후 수년 간 보건 분야에 투자하며 현 세대 아이들을 보호하려 했다. 예방접종을 강화했고, 지역사회 보건종사자 양성 프로그램도 지원했다. 그 결과 2000~2015년 5세 미만 아동의 사망률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감소했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미국의 2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15세 학생들은 미국이나 대다수 유럽국가 학생들보다 국제 수학·과학 능력평가에서 훨씬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 바로 교육에 대한 투자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은 GDP의 약 6%를 교육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미국은 5%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난 9월 18일 발표한 골키퍼스 2018 데이터 리포트 Goalkeepers 2018 Data Report는 위의 세 가지 놀라운 성과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UN의 17대 지속가능개발목표와 연계해 지금껏 이룬 성과들을 평가하고 있다. 워싱턴 대학 건강 통계평가기관 (Washington’s 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어 왔다. 하지만 이 평가는 지나치게 희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무적인 데이터를 보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전 세계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현재 성과에 만족하고 노력을 게을
리하면 결과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이번 보고서가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발전을 한 국가들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2000년 이후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 자체로도 놀라운 숫자”라며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중 75% 정도가 중국이나 인도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2013년 게이츠 재단 CEO를 맡기 전, 저명한 암 연구원, 생명공학 기업 임원,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총장 직 등을 두루 거쳐왔다.
그 결과 남은 빈곤 인구가 한 지역에 집중됐다. 바로 아프리카다. 현재의 인구 및 경제 추세가 지속된다면,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될 것이다. 2050년 무렵에는 하루 1.9달러로 사는 세계 극빈층의 86%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고립될 전망이다. 그 중 절반 가까이가 단 두 국가, 콩고 민주공화국(DRC)과 나이지리아에 살게 된다.
이제 우리는 보고서 내용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보건과 교육에 투자할 경우, 좋은 성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와 인도에서 효과를 거둔 이런 전략이 한번 더 빛을 발한다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이 감소하고 사람들의 권익과 기회가 향상될 것”이라 주장했다. 문제는 이 전략이 실패할 경우 아프리카 청년들은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불평등에 신음할 것이란 점이다[참고로 아프리카는 인구의 약 60%가 25세 미만이다].
후자일 경우 아프리카는 불안정과 폭력, 집단 이주의 온상이 될 것이다. 또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듯, 잠재적으로 전세계 보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이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선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보고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대안, 즉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재단은 그 투자를 통해 ‘청년들의 엄청난 잠재력을 성장 촉진에 활용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 청년들이야말로 미래의 활동가, 혁신가, 지도자, 근로자들’이라 보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4개 주요 분야에 대한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 보건 투자
재단의 주요 초점은 개도국의 보건 문제, 특히 말라리아와 HIV, 결핵, 폐렴, 설사병 등에 대처하는 것이다. 지금껏 감염병 예방과 관련해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아동들이 이런 질병을 앓거나 생명을 잃고 있다. 앞으로의 주요 전략은 지금까지 취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공공 보건에서 예방접종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 말했다. 그녀는 “말라리아 보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기장과 백신은 정부가 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이미 모기장 보급으로만 5억 건 이상의 말라리아 발병을 예방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재단은 해당 정부들과 협업할 수 있고, 보건부 및 재무부 장관에겐 이 경이로운 ‘투자 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혁신이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설사병의 주요 원인인 로타바이러스 Rotavirus는 이제 예방이 가능하다. 머크 Merck와 GSK가 만든 백신 덕분이다. 현재 시험 중인 새로운 머크 백신의 효과가 입증된다면, 에볼라도 예방할 수 있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물론 ‘콩고나 나이지리아가 나와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한 지역의 보건 위기는 전 세계 위기로 번질 수 있다. 게다가 민간 분야 투자 덕분에 로타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2. 교육 투자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베트남은 지난 25년 간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GDP를 300% 이상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기서의 투자수익률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아동의 건강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엄마의 교육 수준이다. 따라서 다른 대부분 국가들처럼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를 위한 교육에 투자하면, 곧 어머니가 될 젊은 여성들의 미래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건강에도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위생설비 투자
많은 자선단체들은 깨끗한 식수 공급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게이츠 재단도 한 사회의 보건 상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바로 위생시설이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는 이에 대해 “다른 이들이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것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특히 인도의 화장실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모든 시민들을 위한 안전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아직 하수처리 설비를 갖추지 못한-그럴 여력도 없는-마을들이 위생시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나마 덜 비싼 ’혐기성 유기물 분해‘ 장비를 도입함으로써, 오물을 안전하게 이동, 건조, 처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4. 가족계획 지원
급속한 인구 증가는 빈곤의 사슬을 끊기 어렵게 만든다. 골키퍼스 2018 데이터 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듯, 아프리카에선 빈곤 비율이 50% 감소해도 사실상 빈곤층 숫자에는 변함이 없다. 2050년까지 인구가 약 두 배 증가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데즈먼드 헬만 박사에 따르면, 재단의 목표는 단순하다: 피임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피임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수의 자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철학이다. 그것이야말로 식민주의와 거리가 먼 여성의 권한 강화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골키퍼스 2018 데이터 리포트 중에서
“If we invest in human capital today, young people wearing sandals in the poorest, fastest
growing countries will be riding bicycles tomorrow, and inventing cheaper, cleaner, safer cars next week.”
오늘 인적자원에 투자하면, 샌들을 신던 급성장 최빈국 청년들이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더 저렴하고, 공해가 적고, 안전한 자동차를 발명할 것이다.”
번역 강하나 sames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