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美, 이란원유 제재 韓 등 8국 예외]'원유수입 중단' 최악 상황 피했지만...도입 물량 감축 불가피

수입길 다시 열렸지만 거래선 확보 등 어려움 커

제재 안풀린 건설분야는 계약파기·사업 철수도

6개월뒤 재심사 리스크...장기전략 수립 못할판

SK이노베이션이 주문한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동해상에 정박해 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SK이노베이션이 주문한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동해상에 정박해 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한국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의 예외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외신이 전해지자 국내 기업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대오일뱅크·현대케미칼·SK인천석유화학·SK에너지·한화토탈 등 정유·화학 5개사는 지난 9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해왔다. 그렇다고 정유업체들의 수입 재개가 곧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업계는 수입 중단에 따른 거래선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또 한시적으로 6개월간만 예외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후 심사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하다.





◇이란산 원유 수입 길 열려…대이란 수출 기업 숨통=5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부품, 합성수지, 철·강판 등 이란 수출은 2012년 62억5,700만달러까지 늘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시행하면서 2013년 44억8,100만달러로 급감했다. 2016년 37억1,700만달러까지 하락하던 수출은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해제로 잠시 반등했다. 지난해 이란 수출액은 40억2,1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2% 올랐다. 비상이 다시 걸린 것은 최근 미국이 이란 제재를 재개하면서다. 올 1~9월 이란 수출은 21억7,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나 줄었다.

미국의 이란 제재와 한국의 대이란 수출이 이처럼 연계돼 있는 것은 독특한 결제체계 때문이다. 이란은 우리나라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원화를 우리나라 은행의 원화결제 계좌에 쌓아놓는다. 이후 우리나라 기업이 이란에 제품을 수출하면 이 계좌에서 원화로 대금을 받는 구조다. 원유를 계속 수입해야 우리 기업이 수출대금을 받아갈 수 있고 반대로 원유 수입이 막히면 이란 수출은 사실상 완전히 멈추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날부터 이란의 원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 항만운영·에너지·선박·조선 거래,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 등을 제한하는 경제·금융제재를 전면 복원했는데 한국 등 8개국의 원유 수입은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이란 수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수출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은 원유 수입에 한해서만 예외를 인정해 기타 제재 대상 품목은 여전히 수출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리스크 완전 해소 아냐”…건설업계는 이미 계약 파기=미국의 결정에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정유·화학업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것이라 정유업계는 손익계산에 분주해졌다. 사실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된 기간 국내 업체들은 원재료 비용 상승 등으로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다.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은 지난해 기준 사우디아라비아(28.5%)와 쿠웨이트(14.3%) 다음으로 많은 13.2%로 국내 정유·화학업계의 실적개선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란산 원유 수입 조치가 임박했던 지난 5월에는 관련 비중이 6.3%로 감소하면서 이후 국내 업체들의 실적도 줄어들었다.

관련기사



국내 화학·정유업계의 숨통이 트인 것은 맞지만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이란에서 상당량이 수입되는 초경질 원유(콘덴세이트)는 일반 원유보다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가 되는 나프타가 더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수요가 높았다”면서 “한국이 이란 석유 제재 예외국에 선정되면 경제성을 따져 물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해 과거와 같은 물량을 수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건설업계는 한국이 제재 예외국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이란 시장을 놓칠 공산이 크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29일 이란 아흐다프(AHDAF)와 체결한 5,946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설비 공사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6월 대림산업도 이란 정유회사인 이스파한과 체결한 2조2,334억원 규모의 정유공장 개선사업 공사계약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금융약정 체결이 이란 제재로 진척이 없자 자동 해지된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란 사업은 자금 조달이 막혀 일단 모두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6개월 뒤 다시 심사…“장기 전략 세울 수 없다”=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국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미국이 일본과 인도, 한국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당장 6개월간 한시적으로만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어서 미국의 결정을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급한 불은 꺼졌지만 6개월 내내 미국의 눈치 보기를 이어가야 한다. 권오형 KOTRA 신남방팀장은 “6개월간 미국이 제시하는 원유 수입 조건을 맞춰야 하고 이후 미국에 또다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6개월 단위의 변수가 있는 만큼 기업들로서는 장기전략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광우·양철민·이재명·박우인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